CMS 4번타자 김혜진 씨(아래 사진)는 국내 유일의 수입차량 전문 도장 전문가로 운동에서도, 일에서도 ‘금녀의 벽’을 허물고 있다.익산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2012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 패자 준결승이 열린 4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전북 익산 야구국가대표훈련장은 서울 CMS와 구리 나인빅스 선수들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창단 후 한번도 나인빅스를 이겨보지 못한 CMS와 2년간 CMS에 져본 적이 없는 나인빅스의 경기. 결과는 CMS의 승리였다. CMS 4번타자 김혜진 씨와 나인빅스 4번타자 김은영 코치의 명암도 그렇게 엇갈렸다. 그러나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4강까지 올라온 이들의 땀방울은 똑같이 귀하고 아름다웠다. 나란히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을 차례로 만나 인생과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수입자동차 총괄팀장 CMS 김혜진
CMS의 4번타자 김혜진(43) 씨는 수입자동차 아우디의 서초 서비스 센터 BP(Body Painting) 총괄팀장이다. 국내에 여성 도장 전문가는 단 5명뿐. 수입차를 만지는 여성은 김 씨가 유일하다. 당연히 업계에서도 유명인사다.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도 그랬듯, 김 씨가 처음 도장 일을 시작할 때는 ‘금녀의 벽’에 부딪혔다. 친구 아버지의 공업사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다 ‘도장 일을 1년만 배워보겠다’고 요청하자, 공장의 도장사들은 반대했다. “공장에 여자가 들어오면 부정 타서 불이 난다”는 게 이유였다. 오기가 생겼다. 도장팀장과 싸우기도 하고 농담으로 눙치기도 하면서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1주일 만에 ‘내 일을 만났다’고 여겼다. “차는 정직해요. 잘 닦아주고 예쁘게 칠해주고 아껴주면 그만큼 보답을 해줘요. 사람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데 차는 노력하면 그만큼 결과가 나오니까 희열을 느껴요.” 그래서 그녀는 앞으로 여성 최초의 정비 총괄 매니저가 되겠다는 꿈을 꾼다. 도장이 아닌 경정비까지 배우는 이유다. “이쪽 용어로는 ‘공장장’이라고 해요. 꼭 해내고 싶어요.”
사실 ‘사랑’으로 치면 자동차보다 야구가 먼저였다. 고교 때까지 야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남동생도 사회인야구를 할 정도다. 그래서 경희대 체육교육학과 1학년 때 야구와 비슷한 소프트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왔고, 일을 시작한 뒤로는 운동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여자도 야구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 후 그녀의 생활은 ‘평일에는 자동차를 만지고 주말에는 야구 배트를 쥐는’ 패턴으로 확 바뀌었다. 김 씨는 “사실 주말에 야구하고 월요일에 출근하면 체력적으로 힘에 부친다. 그런데 동료들이 ‘좋아하는 야구 마음껏 하라’며 월요일에는 일을 덜 할 수 있게 배려해준다. 그들이 도와준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야구장에서 9명이 한데 뭉쳐야 좋은 결과가 나오듯, “회사에서도 비슷한 팀워크를 느낀다”는 귀띔이다.
김 씨에게는 야구가 인생의 ‘활력소’다. “이 기분은 해본 사람이 아니면 못 느낀다”고 말한다. 선수들의 실력이 점점 향상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뿌듯한 마음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팀에 대한 책임감도 남다르다. “막 팀에 들어온 어린 선수들에게 늘 강조해요. 기본기부터 다지라고요. ‘마흔을 넘은 내가 주전으로 뛰는데, 너희는 5년간 기본기만 다져도 십년 넘게 뛸 수 있다’고 말해주죠.” 자신이 자동차 관련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3년간 걸레를 빨고 스프레이건을 닦고 바닥을 청소하는 일만 했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지금부터 잘 다지면 앞으로 점점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선배로서 잘 이끌어주고 싶네요.”
익산|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goodgo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