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 사커에세이] ‘선수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초보감독 서정원의 리더십

입력 2013-04-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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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삼성 서정원 감독. 스포츠동아DB

수원삼성 서정원 감독. 스포츠동아DB

지난 해 12월 수원삼성은 서정원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끌어올렸다. 서 감독은 1999년부터 6년간 수원에서 활약하며 팀의 전성기를 이끈 프랜차이즈 스타다.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태극마크를 달았고,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뛰며 해외 경험도 쌓았다. 몇 년 간 지도자 수업도 받았다. 변화를 꾀하던 수원 구단은 서 감독의 젊은 리더십을 선택했다. 지난 시즌 ‘형님 리더십’으로 K리그 정상에 오른 최용수 감독의 FC서울에 견줄만한 사령탑 선임이었다. 서 감독은 취임 때 템포, 소통, 미래 등의 키워드를 꺼내며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내비쳤다. 성적 때문에 수원만의 색깔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크다. 초보 감독의 생각은 막상 레이스가 펼쳐지면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건 사실 감독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중 하나다.

코치와 감독의 역할에는 큰 차이가 있다. 혼자 짊어지기에 벅찬 책임감이 따른다. 계약기간이 3년이라지만 이는 그리 중요치 않다. 한 두 해를 거치면서 성적과 색깔을 내지 못하면 바늘방석이 될 수밖에 없다.

4개월 된 초보 감독 서정원의 진솔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가 느끼는 코치와 감독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모든 걸 혼자 결정해야하는 부담이 있다. 코치 때는 감독에게 의견 내고, 건의하는 정도였지만 감독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한다. 생각도 깊다. 신중해지더라. 또 당장 닥친 경기 뿐 아니라 다음 경기도 염두에 둬야한다.”

질문을 받자 기다렸다는 듯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굴곡이 많은 탓일 게다. 또 다른 어려움은 없었을까.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물었다.

“선수들이 경기를 잘 하고, 또 좋은 경기를 했는데도 졌을 때다.”

감독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전술적인 완성도가 높고, 경기를 지배했는데도 승점을 못 따면 죽을 맛이다. 서 감독도 몇 차례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한다.

서 감독이 풍기는 인상은 ‘순둥이’다. 그런 인상 때문에 선수 다루기가 힘들지는 않았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카리스마는 중요하지 않다. 화를 낸다고 될 일도 아니다. 경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선수들 잘못이 없는데도 화를 낼 필요는 없다.”

서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자신이 선수 때 느낀 점을 감독이 되어서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선수 심리를 이해해야만 신뢰가 쌓인다는 생각이다. 이른 바 ‘신뢰의 리더십’이다.

선수는 감독을 닮는다. 감독이 경기를 즐기면 선수도 마찬가지다. 감독이 웃는 낯이면 팀 분위기는 좋아진다. 감독이 조급하면 선수는 서두른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즐기고, 웃으면서, 여유를 갖겠다고 한다. 초보 감독이 맞나 싶을 정도다.

산전수전의 첫 장을 연 서 감독에게 충고할 생각은 없다. 힘겹게 시련을 극복해가는 감독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 오히려 상황을 꼬이게 할 수 있다. 더구나 수원은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K리그 클래식 단독 선두(4승1패)다.

다만 한 가지만은 전하고 싶다. 강팀은 기복이 없어야한다는 점이다. 어느 상황에서도 일정한 경기력을 유지해야만 강팀 소리를 듣는다. K리그 클래식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하는 얘기다. 챔스리그는 무승(2무1패)으로 조별리그 탈락 위기다. K리그 클래식 선두를 무색하게 만든다. 기복 없는 레이스야말로 명장을 꿈꾸는 서 감독이 평생 새겨야할 화두일 것이다.

스포츠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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