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유희관이 지난달 15일부터 호주 시드니 블랙타운에서 진행되고 있는 1차 전지훈련에서 팀플레이 훈련을 하고 있다. 두산 선수단은 17일부터 일본 미야자키에서 2차 전훈을 실시한 뒤 다음달 4일 귀국한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잠실서만 12승…다른 구장보다 압도적 승률
직구·슬라이더·체인지업 잠실서 더 안정적
7월 이후 급격한 체력 저하 극복 여부는 과제
빅데이터의 시대다. 이제 야구인들의 직감이 아닌 첨단기계가 측정하는 숫자로 선수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KBO리그에서도 2009년부터 잠실구장에 PTS(투구추적시스템)가 최초로 설치됐다. PTS를 통해 투구의 로케이션, 회전수, 릴리스포인트를 산출할 수 있다. 스포츠통계전문회사인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2016시즌에는 전 구장에 PTS가 장착된다. 그렇다면 PTS는 두산 좌완 선발 유희관(30)의 2015시즌을 어떻게 분석했을까. 그리고 이 데이터는 2016시즌의 유희관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느림의 미학’으로 인식되는 유희관은 구속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투수이기에 PTS 추이는 더욱 유의미하다.
● 첫 번째 추론=7월 이후를 버틸 체력이 관건!
스포츠투아이에 월별 구속 분석을 의뢰한 결과, 직구·슬라이더·커브·체인지업 등 모든 구종의 구속이 7월 들어 급속히 저하됐다. 특히 4월 시속 130km였던 직구는 7월 122.88km까지 떨어졌다. 변화구 평균 구속도 전부 5km 이상 내려갔다. 유희관의 월별 방어율이 4월 3.86, 5월 3.21, 6월 2.04였는데 7월 4.83으로 급격히 나빠진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7월에 구위가 떨어지는 것을 유희관과 두산 코치진이 몰랐을 리 없다. 이에 따른 대처가 릴리스포인트의 변화로 나타났다. PTS에 따른 유희관의 월별 평균 상하 릴리스포인트가 7월부터 상승했다. 모든 구종에 걸쳐 후반기 릴리스포인트가 올라갔다.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기 릴리스포인트가 내려가는 것이 상식적인데, 역으로 올라갔다는 것은 의도적 변화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체력이 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릴리스포인트만 인위적으로 올린 것은 좋은 결과를 빚어내지 못했다. 유희관의 전반기(3.28)와 후반기(5.09) 방어율 차이가 이를 증명한다. 실제로 유희관의 슬라이더 로케이션을 PTS로 따라가보면 7월 이후 일관되게 높게 형성된 것으로 드러난다. 슬라이더의 제구가 되지 않자 유희관은 후반기 그 비율을 줄였는데, 구종이 단조로워지면서 결과는 더 나빠졌다.
● 두 번째 추론=유희관은 잠실에 최적화된 투수!
유희관의 잠실구장 방어율은 3.14(시즌 방어율 3.94)였다. 여기서만 12승(시즌 18승)을 수확했다. 잠실 외 구장에선 2승 이상을 챙기지 못했다. PTS로 측정하면 유희관의 직구·슬라이더·체인지업의 평균 구속은 모두 잠실에서 원정 때보다 빨랐다. 반면 이 3가지 구종의 릴리스포인트는 잠실보다 원정에서 높았다. 투수친화적인 잠실에서 유희관이 심적으로 자연스럽게 공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원정에선 힘이 들어갔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유희관은 힘으로 타자를 제압하는 유형이 아니라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아야 살아남는 투수이기 때문이다. 두산이 2016시즌 잠실구장에서 유희관의 등판을 늘려주는 전략이 합리적일 수 있다. 시행착오 속에서도 2015시즌 유희관은 성공한 투수였다. 그러나 지난해 후반기 슬럼프에서 깨달은 바가 있다면 올 시즌 유희관은 더 좋아질 여지가 남아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