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사람은 왜] 日소녀그룹 AKB48

입력 2010-01-01 14: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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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 42명? 日소녀그룹 AKB48의 인해전술, 왜?

Q1: '소녀시대' 멤버 수는 모두 몇 명일까?
Q2: '소녀시대' 멤버들의 이름을 전부 써라.

'GEE' '소원을 말해봐' 등 올 한 해 많은 히트 곡을 선보이며 오빠, 삼촌, 아저씨들의 마음을 앗아간 '소녀시대'. '소시' 팬들에겐 너무나 시시한 질문이겠지만 답은 이렇다.

A1: 9명.
A2: 태연, 윤아, 수영, 효연, 유리, 제시카, 티파니, 써니, 서현.

하지만 TV를 통해 소녀시대를 언뜻 봐온 사람들은 이 간단한 두 질문에도 답하기가 쉽지 않다. 한두 명까지는 알 수도 있지만 멤버 수가 많아서 누가 누구인지 헛갈리기 마련이다.

 AKB48이 공연하는 모습.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표방한 이 그룹은 도쿄 아키하바라에 AKB48 전용극장에서 매일 콘서트를 열고 있다.


한 그룹의 멤버가 9명만 돼도 팬이 아닌 대중에겐 이들이 몇 명인지, 각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하기가 어렵다.

하물며 멤버 수가 42명이나 되는 그룹이 있다면 어떨까. 아무리 열성적인 팬이라도 42명의 얼굴과 이름을 술술 외우려면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암기력도 필요할 것이다.

일본 소녀그룹 'AKB48'은 멤버 수가 현재 42명에 이른다. 일본에선 2005년 108명의 모델, 트랜스젠더, 포르노 배우가 속한 '108 본노가루즈(번뇌걸즈)'라는 그룹이 나온 사례가 있어 AKB48의 멤버 수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108 본노가루즈는 엄청난 숫자를 내세운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단기간 활동했을 뿐이다. 모든 멤버가 함께 무대에 선 적도 거의 없어서 그룹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AKB48은 108 본노가루즈와는 달리 2005년 데뷔한 뒤 꾸준히 활동하며 일본의 대표적 여성 아이돌그룹으로 성장했다.


▶ 만나러 갈 수 있는 '극장 아이돌'

AKB48은 2005년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컨셉트를 내세워 데뷔했다. 팬들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동네 친구나 여동생을 만나는 것처럼 이들을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이 그룹은 데뷔 당시부터 도쿄의 번화가인 아키하바라(秋葉原)에 마련된 전용극장 'AKB48극장'에서 거의 매일 공연을 진행해 왔다. TV나 콘서트 등 한정된 무대에서만 이들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고 이 극장을 찾으면 멤버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AKB48의 팬들은 앳된 소녀인 신인 아이돌이 공연을 통해 무대 감각과 실력을 다지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었다. 공연과 함께 '악수회'도 꾸준히 개최해 멤버들이 팬과 직접 만나는 기회를 자주 마련하며 '1대1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했다.

AKB48 멤버들이 2008년 발매한 음반 재킷 사진. 한 학급을 연상케 할 정도로 멤버 수가 많다.


특히 악수회는 AKB48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2008년 8월엔 도쿄 오사카(大阪) 나고야(名古屋) 후쿠오카(福岡) 등 일본 전국 4개 도시를 순회하며 악수회를 개최했고 인기가 높은 일부 멤버는 6시간 동안 팬들과 악수하는 이벤트에도 참가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AKB48은 TV에나 나오는 스타 이미지에서 벗어나 팬들의 손을 잡고 어울려 노는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2000년대 중반까지 일본 여자 아이돌그룹의 대명사로 불리던 모닝구무스메가 음반, TV, 사진집 등 매체 활동에 주력하던 운영 방식과 차별화한 것이다.

또 AKB48극장에는 이들과 관련된 상품을 판매하는 전용매장 '48's Shop'을 개설했다. 지금은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하면서 각 멤버의 상품화를 통한 수익 창출과 함께 그룹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도 얻고 있다.

멤버들의 소식을 시시각각으로 전하는 블로그 역시 AKB48이 인기를 얻게 된 주요 비결이다. 팬들은 소속사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하는 정보 대신, 멤버들이 블로그에 남긴 글과 사진을 접하며 AKB48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블로그는 AKB48이 소녀그룹이지만 여성 팬을 확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TV에 나와 예쁜 척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멤버들이 블로그에 나름대로 개성을 살린 패션 감각을 자랑하며 유행을 선도한 것이다. 같은 또래의 소녀들은 이 같은 게시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AKB48의 팬으로 흡수됐다.

AKB48은 전용극장 무대와 악수회, 블로그를 중심으로 팬을 확보해 가면서 정상을 향해 한 계단 씩 발돋움했다.

그 결과 2007년 NHK의 연말 가요행사인 '홍백가합전'에 참가했고 2009년 11월엔 15번째 싱글 'RIVER'가 데뷔 4년 만에 오리콘 주간차트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2009년 8월 일본 가수들 사이에서 '꿈의 무대'로 불리는 부도칸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팀별로 나뉘어 활동하는 AKB48의 팀A 멤버 13명의 사진. AKB48은 전체 멤버가 함께 음반을 내거나 가수 활동과 팀 활동을 병행한다.



▶ 멤버 42명…'인해전술'이 인기 비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멤버가 42명에 이르다보니 그동안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린 경우도 많다. 특히 AKB48의 쿠라모치 아스카(20)가 중학생 시절에 찍은 누드 사진이 유출돼 파문을 일으켰다.

이 그룹은 기존 멤버가 '졸업'하고 새 멤버가 가입하는 방식으로 데뷔 당시부터 48명 내외의 인원을 유지해 왔다. 현재 정식 멤버는 42명이지만 '연구생'으로 불리는 후보 멤버까지 합치면 AKB48에 소속된 사람은 70명에 이른다.

42명이 동시에 무대에 오르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AKB48은 주로 A, K, B 세 팀으로 나뉘어 활동하면서 '해쳐 모여' 방식의 운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인해전술' 운영은 그룹이 다양성을 갖추는 밑거름이 됐다. 각 멤버마다 자신의 장기를 살려 배우, 솔로 가수, 모델, MC, 예능 방송인 등 연예계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개개인의 역량을 통해 그룹 전체의 인기도 높아지면서 '윈-윈'하는 효과를 봤다.

개인 활동을 각자 다른 소속사를 통해 진행하는 점도 주목된다. 소속사 별로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AKB48은 그룹 활동과 개인 활동을 구분해서 각기 다른 소속사가 맡는다.

AKB48 과 관련된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CD, DVD, 사진집 이외에 T셔츠, 액세서리, 스티커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실존 인물을 만화 캐릭터처럼 상품화시켜 수익을 내는 동시에 그룹의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도 얻고 있다.


멤버가 많다보니 경쟁도 치열하다. AKB48이 일본을 대표하는 여자 아이돌그룹으로 각광받지만 멤버 모두가 이 같은 인기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마에다 아츠코, 오오시마 유코 등 42명 중에서도 주목받는 멤버들은 따로 있다.

경쟁에서 밀려나면 자의반타의반으로 그룹을 탈퇴하거나 잊혀지는 존재가 된다. 지금 정식 멤버로 활동하더라도 28명에 이르는 후보생들이 언제 자신의 자리로 올라올지 알 수 없어 불안한 것도 자극이 된다.

실제로 올해 6월에는 AKB48 음반을 구매한 팬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해 42명 가운데 새 싱글 음반에 참여할 멤버 20명만 선발하기도 했다. 탈락한 멤버들은 AKB48에 속하지만 가수 활동은 못하게 돼 다음 투표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옆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멤버들이 동료이자 모두 라이벌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더 열심히 노래를 부르거나 자신만의 장기를 살리며 팬들의 눈을 사로잡는 수밖에 없다. 40명이 넘는 멤버 각자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아이돌로서 실력을 쌓는 '적자생존'의 선발 방식은 그룹 전체가 성장하는 비결이다.

작은 사회를 보여주는 듯한 AKB48. 불황의 그늘이 드리운 시대엔 아이돌 스타도 경쟁을 통해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것일까. 물 위에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백조가 물 속에선 두 발로 몸부림을 치는 것처럼, 소녀 42명의 깜찍한 미소와 알록달록한 옷차림 뒤에는 이런 처절함이 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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