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 라이프 스토리 ⑦ 이동국] 붉은 네 꽃이 피려고 12년의 시련이 있었나 보다

입력 2010-06-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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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오스트리아 노이스티프트 캄플경기장에서 남아공월드컵 한국 축구대표팀 이동국 선수가 밝게 웃으며 훈련을 하고 있다.<노이스티프트=전영한 기자>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벅차오르는 감격은 그 누구와 비할 바 아니다. 어머니 김명자씨는 “너무 좋아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조별리그 1,2차전에서 줄곧 벤치를 지키던 열아홉살 청년은 네덜란드와의 마지막 경기에 교체 출장, 통쾌한 중거리 슛을 날린다. 비록 골문은 벗어났지만 단 한번의 슛만으로도 그에게 ‘한국 축구의 미래’라는 찬사가 쏟아졌고 온 국민의 시선은 그에게 모아졌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다시 월드컵 무대를 밟는데 12년이 걸렸다. ‘라이언 킹’ 이동국, 그에게 이번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 갖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건 그래서다.


● 달리기 잘하던 모범생

이동국이 축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과목 ‘수’를 받던 모범생 이동국은 포항시에서 열린 육상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또래들보다 유난히 달리기를 잘했던 그는 포항제철 동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의 눈에 들었다.

축구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마치 필연을 가장한 우연처럼….

‘축구 선수’ 이동국은 이후 엘리트 코스만 밟았다. 열세살이던 1992년 차범근 축구대상 장려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고, 포항제철고에 재학 중이던 1996년에는 청소년 대표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 1998년, 그리고 2002년

2002한일월드컵 한국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 감독. 1998프랑스월드컵 때 네덜란드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그가 한국에 처음 온 뒤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선수가 바로 이동국이었다. 네덜란드전에서 통쾌한 중거리슛을 날렸던 이동국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동국은 히딩크 감독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결국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불과 4년 전이던 1998년, 한국 축구의 미래로 불렸던 이동국은 끝내 부름을 받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좌절감을 맛본 해였다. 온 국민이 축구에 열광하던 2002년 여름, 이동국의 머릿속에 축구는 없었다.


● 결혼과 또 다른 좌절

2004년 후반기 쯤으로 기억된다. 당시 광주 상무 유니폼을 입고 있던 그에게 ‘축구선수로서 꿈이 무엇이냐’는 식상한 질문을 던졌을 때, 이동국은 천천히 그러면서도 똑 부러지는 말투로 말했다.

“월드컵 무대에서 꼭 한번 제대로 뛰고 싶다.” 한 때 짧지 않은 방황의 길을 걸었던 그에게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해 준건 아내 이수진 씨였다. 1998년 8월의 어느 날, 처음 본 이씨에게 한 눈에 반한 그는 7년간의 열애 끝에 2005년 결혼했고 2006년 독일월드컵을 목표로 다시 정진했다.

‘이동국이 다시 돌아왔다’는 기대와 희망이 싹터가던 2006년 4월. 운명의 여신은 그를 또 한번 외면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게임 도중 무릎십자인대가 파열됐고, 눈물을 머금으며 꿈을 접었다. 이동국에게 ‘비운의 주인공’이란 달갑지 않은 닉네임이 붙은 것도 그 때였다.


● 마침내 다시 찾아온 기회

독일월드컵을 병상에서 지켜본 그는 또다시 절치부심했다.

아버지 이길남 씨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회상할 만큼, 그의 마음고생은 적지 않았지만 ‘이동국은 이제 끝났다’는 세간의 평가를 뒤로 한 채 그는 다시 일어섰다.

허정무 호에 승선한 것은 월드컵 본선행이 확정 된 이후. 2007년 아시안컵 음주 파동에 휩싸였던 그는 1년여의 자격정지 끝에 2009년 8월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을 통해 25개월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골 결정력 논란을 잠재우고 허정무 감독의 믿음을 받으며 최종엔트리 승선이 유력해 보였지만, 마지막 순간 마음고생은 되풀이됐다. 지난 달 16일 에콰도르전에서 또다시 부상 암초를 만났고 ‘이번에도 힘들 것’이란 우려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난 이동국은 마침내 12년 만에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 꿈을 이룰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이수진 씨는 최종엔트리가 발표된 1일, 자신의 미니홈피 메인 문구에 “모든 분들의 힘으로 하늘은 당신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했다.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겠지만, 늘 (쌍둥이) 재시-재아에게 자랑스러운 아빠이고 싶다는 당신의 꿈이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씨의 말처럼, ‘포기’할 수밖에 없던 벼랑 끝에서도 다시 일어섰던 이동국. 열아홉살에 월드컵 무대에 처음 섰던 그는 이제 서른한살 나이에 다시 그 꿈의 무대를 밟는다.

그에게 주목하는 건 그가 다름 아닌 이동국이 기 때문이다.



이동국 프로필


생년월일=1979년 4월29일 출생지=경북 포항시 출신교=포항제철동초-포항제철중-포항제철공고
신체조건
=187cm, 83kg 포지션=FW 소속=전북 현대 A매치 출전 및 성적=83경기 출전 25골 월드컵 출전경험=1회(98프랑스월드컵)

A매치 데뷔=1998.05.16 자메이카(친선경기, 서울 잠실)A매치 첫 득점=2000.02.18 코스타리카(골드컵, 미국 LA)
경력
=포항스틸러스(1998∼2002, 2000년 독일 베르더브래멘 임대), 광주상무(2003∼2005), 잉글랜드 미들즈브러(2005∼2007),성남일화(2007∼2008), 전북 현대(2008∼)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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