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 28kg 바위로 맞은 충격…잊을 수 있겠니?

입력 2011-08-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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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이용규가 5일 문학SK전에서 공에 무릎을 맞고 쓰러져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KIA 이용규가 5일 문학SK전에서 공에 무릎을 맞고 쓰러져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테마베이스볼 | 사구 후유증과 극복 방법

140g 야구공 150km로 맞으면
28kg 바위 1m 밑에서 맞는 충격
사구의 상처, 무의식 속에 잠재
몸 경직돼 공 보고도 잘 못피해

상대팀 관중의 응원 등 배려 중요
투수를 믿는 마음도 치유에 도움
가해 투수도 엄청난 심리적 압박
몸쪽 볼에 대한 두려움 생기기도
‘사구(死球·Hit by a pitched ball)’는 투수가 던진 공에 타자가 피하려 했음에도 몸이나 유니폼에 맞는 것을 일컫는다. 크게 타자를 향해 고의적으로 던지는 경우와 스트라이크존 몸쪽코스를 공략하다 우연히 맞히는 경우 2가지로 분류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타자들에게 위협적이다. 만에 하나 얼굴이나 관절 등 연약한 부위에 맞을 경우 선수생명까지 위협받기 때문이다.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프로야구 구단 카운슬링을 맡고 있는 심리상담사와 경험자들의 입을 통해 사구 후유증과 극복법을 들어봤다.


○끊이지 않는 사구의 역사

KIA 김상현은 7월 29일 광주 넥센전에서 상대투수였던 김상수의 볼에 얼굴을 맞아 광대뼈가 함몰됐다. 수술도 무사히 끝내고 순조롭게 회복중이어서 다음 주 복귀 예정이지만 후유증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뿐만 아니다. SK로 이적한 박진만은 4월 광주 KIA전에 상대투수였던 서재응의 투구에 머리를 맞아 한동안 어지러움증에 시달렸고, 롯데 조성환은 2009년 SK 채병용의 볼에 강타당해 광대뼈가 4곳이나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바 있다.

사구로 인한 사고는 과거에도 끊이질 않았다. 대표적인 선수가 심정수다. 그는 현대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2001년 롯데 강민영의 직구에 역시 광대뼈가 함몰돼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투사 헬멧’을 쓰고 다시 타석에 섰지만 그해 타율 0.294, 18홈런, 70타점. ‘헤라클레스’라는 명성에는 다소 못 미치는 성적표였다.

KIA 이종범도 야구인생을 크게 뒤흔들었던 2번의 아찔했던 사구 경험이 있다. 일본 진출 첫해(1998) 한신 가와지리의 볼에 팔꿈치를 강타 당했던 일과 한국 복귀 후 2002년 롯데 김장현의 직구에 광대뼈가 함몰되는 사건이다.


○사구가 무서운 이유는 무의식의 공포

140g밖에 나가지 않는 야구공의 파괴력은 150km의 직구라고 했을 때 28kg의 물체를 1m 위에서 떨어뜨렸을 때 충격과 맞먹는다고 한다. 랜디 존슨의 100마일(시속 161km)짜리 직구에 비둘기가 맞아 즉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

삼성의 자문교수인 경북대 김진구 스포츠심리학 교수는 “인간이 느끼는 공포를 정량화할 수는 없지만 만약 1에서 10까지 수치를 규정할 때 사구는 10에 가까운 극도의 공포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구의 경험을 겪은 선수들이 다시 타석에 섰을 때 살해 위협을 당한 것과 맞먹는 공포를 체험한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타석에서 느끼는 감정이 ‘무의식’ 속에서의 공포라는 점이다. 김 교수는 “150km의 강속구에 맞았을 때 아픈 것 즉,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인지적인 측면은 사실 두 번째다. 강인한 정식력으로 스스로는 공포를 극복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두려움은 기본적으로 무의식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몸쪽으로 볼이 날아오게 되면 머리로는 공에 안 맞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비단 야구뿐 아니라 모든 운동을 흔히 신체적인 기술로 정의하지만 사실 내면에 축적된 기억이 기술로 발현되는 것이다. ‘사구’라는 외부자극을 경험하게 되면 뇌가 보낸 정보를 신체 각 부분으로 전달하는 뉴런이 정상적으로 신호를 전달하지 못한다.

결국 몸이 경직되고 경기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9년에 이어 지난해 KIA 윤석민의 볼에 머리를 맞았던 롯데 조성환도 “(윤)석민이 볼의 경우에는 평소 같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는데 머리와 다르게 몸이 굳어버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두산 선수단의 카운슬링을 맡고 있는 김나라 박사는 신체적 문제와 다른 측면의 불안감도 수반된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선수들이 사구를 맞은 후 재부상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며 “왜냐하면 경쟁이 치열한 1군 선수들에게 공백기가 가장 큰 적이다. 또 다시 부상을 당하면 기간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구는 가해자도 아픈 마음의 부상

사구후유증은 비단 타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을 던진 투수도 그에 못지않은 심적 타격을 입는다. 실제 KIA 윤석민은 지난해 8월 롯데 홍성흔과 조성환을 연달아 맞힌뒤 공황장애를 겪을 정도의 극심한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렸다.

두산 조계현 투수코치는 “사구도 경기 중 일부고 선수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만약 자신의 볼에 상대타자가 심하게 다쳤다면 아무래도 몸쪽 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대투수였던 삼성 선동열 전 감독도 예외가 아니었다. 선수시절 사구 후에는 며칠 동안 몸쪽 볼을 많이 안 던지더라.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도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와 내성적인 성향의 사람과의 차이는 있다”며 “심리학적으로 분류되는 행동유형 B형의 사람인 경우 죄책감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흔히 범죄자가 될 수 없다고 보는데 선수들 중에서도 우연히 맞혔더라도 미안함에 심적으로 많이 흔들리는 이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KIA 이용규-김상현-윤석민. 스포츠동아DB

KIA 이용규-김상현-윤석민. 스포츠동아DB




○사구 극복법은 두려움과 맞서는 것

그렇다면 사구의 공포는 과연 어떻게 떨쳐내야 할까. 조성환은 “이상한 말이지만 상대투수를 믿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대투수가 나를 맞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타석에 서야만 두려움이 줄어든다는 얘기였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나는 아직도 매 타석에 설 때마다 두렵다. 아마 이건 야구를 하는 한 영원히 가져가야할 마음의 짐인 것 같다”고 고백했다. 후유증도 크다. 그가 올해 안경을 쓴 이유도 사구 때문이다. 병원 검사 결과 ‘사물이 흔들리는 이유는 신체적인 문제보다 심리적 문제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도망치기보단 정면승부를 택했다. 검투사헬멧을 쓰는 것조차 상대투수에게 몸쪽 공을 두려워한다는 약점을 드러내는 것 같아 과감히 벗어던졌다.

또 한 가지,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남다른 배려가 조성환을 다시 그라운드 위로 설 수 있게 했다. 그는 “사구사건 이후 첫 경기가 얄궂게도 SK전이었는데 상대투수가 김광현이었다. 당시 로이스터 감독은 ‘사고를 낸 투수가 우완이었기 때문에 좌완을 상대하는 것이 심적으로 더 나을 것’이라며 선발로 출장시켜준 걸로 안다”며 “운이 좋게도 첫 타석과 두 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쳤는데 그때 SK팬들이 내 이름을 연호해주면서 박수를 쳐줬다. 가장 중요했던 첫 경기에서 주위 사람들의 배려와 응원으로 단추를 잘 꿴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타석에서 공포는 당연한 일 적극적 치료 필요

레너드 코페트의 저서 ‘야구란 무엇인가’에서도 타격의 가장 기본적인 요체는 두려움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서는 선수들은 누구나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어떻게 딛고 이겨나가느냐가 관건이다.

김 교수는 “주위의 꾸준한 관심과 장기적인 심리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상당수 선수들이 꼭 몇 달, 혹은 몇 년 전의 얘기를 한다”며 “아직 전문적인 스포츠심리학이 한국에서 발달하지 않았고 여전히 정신과 상담에 대한 편견이 많아 문제가 있을 때 즉각적으로 해결을 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다가 벼랑 끝에서야 자신의 문제를 고백하는 것이다.

마음의 병을 키우다 유니폼을 벗은 선수도 있다. 두려움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재현 기자 (트위터 @hong927)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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