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크로스오버’라고 개량가야금을 서양리듬에 박자 악기에 음악이 만들어진 퓨전음악들이 많이 나왔거든요. 하지만 솔로 가야금으로 활동 하는 가수는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바로 현대판 가야금 퓨전 병창이죠.”
가수 리애지는 지난 2012년 퓨전 트로트 ‘새콤달콤’을 발매했다. ‘새콤달콤’은 신나는 리듬의 전통가야금 멜로디 가락을 담았다. 가사의 내용은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지만 듣는 대중들에게 국악과 트로트를 알릴 수 있는 매력적인 곡이다.
가수 리애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가야금을 접했다. 음악에 대해 배운 건 아무 것도 없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가야금을 배우게 됐다.
“그 당시 아버지가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어요. 아버지는 교사 연수에서 가야금 강사의 가락을 듣고 확 반했데요. 여성적이면서도 애환이 담긴 가야금 선율을 듣고 제게 강력 추천해 주신 거죠.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명절마다 친척들에게 세뱃돈을 많이 받을 정도로 실력이 늘기 시작했어요.”
서양 악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음악시장에서 가야금으로 주목받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가야금을 연주할 줄 아는 이는 전교생 중에 딱 한 명, 리애지 뿐이었다. 학창시절 가야금을 메고 다닌 리애지는 ‘낚시대를 들고 다니는 아이’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초등학교부터 배운 가야금이 빛을 보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였어요.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에 출연해 가야금 산조를 선보였어요. 아마 전교생 중에 가야금을 켤 줄 아는 사람이 저뿐이라 그랬겠죠. 전교생들 앞에서 연주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참 행복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좋은 추억이네요.”
그 후 리애지는 가야금 전공을 살려 서울예술전문대학교에 입학했다. 국악 학습을 통해 자연스레 민요가락에도 관심을 갖게 돼 석사까지 준비했다. 이어 악기와 창을 함께 연주하는 형태인 ‘병창’까지 섭렵했다.
“서울예전 국악과에는 부전공을 신청해서 꼭 배워야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민요를 택하게 됐죠. 인간문화재 안비취 선생님과 경기민요 이춘희 선생님에게 민요를 제대로 배웠어요. 특히 이춘희 선생님이 경기 병창을 해보라는 말에 도전의식이 생겼어요. 그래서 경기가야금 병창 명인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병창곡들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이춘희 선생 집에서 기거하며 경기 민요 및 경기 잡가 등을 배우며 자신의 실력을 키웠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의 실력을 눈여겨본 국악대중가수 김태곤과 인연도 맺었다.
“서울국악 경연대회에 나갔어요. 현악 대기실에서 가야금을 타고 있었는데 그때 김태곤 선생님을 만났죠. 제 실력을 보시고는 ‘파랑새’ 곡을 음반을 내자고 권유하셨어요. 워낙 국악대중가수로 유명하신 분이라 정말 신기하면서도 감사했어요.”
이어 리애지는 KBS ‘열린음악회’, ‘가요무대’, MBC ‘청소년음악회’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특히나 1996년 김태곤과 함께 꾸민 무대는 국악 퓨전의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평이 쏟아지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열린음악회’ 출연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유네스코 지정 경주 불국사 편에 나갔었죠. KBS 오케스트라합주와 가야금 선율에 김태곤 선생님의 꽹과리가 곁들여진 ‘망부석’, ‘송학사’를 연주했죠. 당시 국악 퓨전의 획을 그었다면서 많은 분들이 호평해주셨어요. 그때 그 음악을 통해 제가 가수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 가요와 민요와 퓨전병창의 일인자로 우뚝 서는 것이 리애지의 큰 목표다. 오갑순, 김태곤 등 자신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준 선배들의 뒤를 잇고 싶은 마음이 가장 앞선다.
“현대판 가야금 퓨전 병창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가야금 병창으로 민요와 가요를 퓨전으로 부르게 돼 영광스럽죠. 경기민요를 가야금 반주에 얹어 부른 경기병창곡까지 나온다면 가요계뿐만 아니라 경기민요에도 힘을 실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준 모든 선배님들께 감사드려요. 그 분들의 뒤를 꼭 이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동아닷컴 장경국 기자 lovewit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