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꾼 것 같다. 선수들도 나도 방심했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의 얼굴에는 경기 다음날까지도 진한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후반 2분 만에 박주영이 페널티킥으로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킬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허 감독 역시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탓일까. 환희가 탄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후반 교체 투입된 상대 공격수에게 두 골을 모두 내준 것이 뼈아팠다. 상대 감독의 용병술에 허를 찔린 셈.
1일 오전 파주트레이닝센터(NFC)에서 훈련 후 허 감독은 전날 무승부의 요인으로 ‘방심’과 ‘집중력 부족’을 들었다.
허 감독은 “김두현이 후반전에 결정적인 찬스에서 골을 넣어줬으면 분위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실점 상황도 너무 허무했다”며 “2골을 넣은 후 선수들이 방심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실패의 원인을 선수들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경기였다. 허 감독은 자신의 책임 역시 통감했다. 5월 31일 경기 후 공식인터뷰에서 “조용형의 교체 투입은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말한 허 감독은 이날도 “선수 뿐 아니라 나도 방심한 것이 사실이다”고 시인했다.
허 감독은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이날 선수들과 허심탄회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박지성, 안정환 등 요르단전 선발멤버 10명은 회복훈련을 하기 전 운동장 한 편 그늘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허 감독과 30여 분 간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방식의 미팅은 허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후 처음. 허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이런 미팅에 익숙하지 않아 이야기를 이끌어내는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허 감독은 “요르단이 어제 경기에서 역습도 강하고 매우 터프했다”며 “남은 기간 현지 상황을 고려해 선수들의 컨디션을 면밀히 점검해 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허 감독은 지난해 아시안컵 당시 음주 파문으로 징계를 받아 A매치를 뛸 수 없는 골키퍼 이운재에 대해 “3차 예선 후 축구협회와 논의해보겠다. 그의 과오는 인정하지만 지금 팀에는 수비를 리드할 수 있는 안정된 선수가 있어야 한다”며 징계 경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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