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감독·홍명보코치남북전을추억하며…

입력 2008-06-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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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A매치를 치른다. 남북은 22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3조 최종전을 갖는다. 역사적인 대결을 앞두고 북한전 경험이 있는 김호 대전 시티즌 감독,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코치 등으로부터 북한 축구에 대한 추억어린 얘기를 들어봤다. “방에서 말할 땐 TV 틀어놔라” 지시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코치 1990년 7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1회 다이너스티컵에서 처음 북한과 경기를 치렀다. 당시는 북한과 교류가 거의 없어 경기를 앞두고 바짝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3개월 뒤 남북 통일축구가 열렸다.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경기를 했는데 북한에 갔을 때 통제가 매우 심했다. 북한에 들어가기 전에 교육도 받았다. 개인행동을 자제할 것과 방에서 이야기를 할 경우 TV 소리를 조금 크게 틀어놓고 하라는 당부도 있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는 한국 사람이 전혀 북한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북한 요원들의 통제도 심했다. 그 후 2차례 더 북한과 만났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1993년 치른 월드컵 예선전이다. 당시 최종 상대가 북한이었는데, 우리는 북한을 반드시 꺾고 일본-이라크전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우리는 후반 3골이 터지면서 쉽게 승리했다. 남북 대결 뿐 아니라 월드컵 본선행이 결정된 경기여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북한 선수 중에는 ‘영선’이라는 스트라이커가 기억난다. 성은 김씨 혹은 박씨였던 것 같은데 내가 수비수라 그 선수와 마주칠 일이 많았다.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지만 북한과 축구를 하면 항상 그 친구를 볼 수 있었다. 같은 숙소 묵어도 접촉 생각도 못해 ○김호 대전 시티즌 감독 이상하게도 북한 축구와 인연이 없었다. 현역 시절에는 단 한 차례도 경기를 해보지 않았고,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야 딱 한 번 만났다. 양지팀에서 뛸 때 1966잉글랜드 월드컵 당시의 필름을 구해 봤는데, 북한 축구의 발전에 놀랐다. 이탈리아를 꺾고, 포르투갈과 8강전에서 대등하게 싸웠던 모습이었는데, 유명한 ‘사다리 전법’이 눈에 띄었다. 정말 ‘많은 노력을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대표팀 감독이 되고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94미국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을 치렀다. 당시 우린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다. 같은 숙소에서 묵었는데, 운동 시간을 제외하고 항상 각자 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통제는 그리 심해보이지 않았지만 아예 접촉할 수 없었다. 왼쪽 풀백의 오버래핑이 뛰어났고, 북한 사령탑이 독일 출신이었다는 것 이외에는 딱히 기억이 없다. 요즘 북한 축구의 발전을 보면 66년 때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다. 희망이 엿보인다. 66년 당시 북한은 동유럽 지역으로 자주 나가곤 했는데, 1993년에는 구 소련 연방이 무너지면서 겁을 먹고 개방하지 못해 한동안 정체됐던 것 같다. 요즘 대표팀을 위주로 한 발전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만 한 팀에 ‘올인’하는 게 아닌, 전반적인 선수 육성이 이뤄져야할 필요가 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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