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희 어머님 예순세 번째 생신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여보 이번 어머니 생신에 뭘 사 드리면 좋을까?” 하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었던 걸 얘기했습니다. 아내는 가만히 듣고 있더니 “그렇게 비싼 거 사드리면 좋겠지만 우리 집 형편도 있고… 어머니께서 좋아하실 만한 거 사실 수 있게 그냥 현금으로 드리면 어때?” 물었습니다.
전 그 말에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머니 생신이고 1년에 한번 뿐인데…조금 과하더라도 좋은 선물 사드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무튼 그렇게 생신 날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회사 일 때문에 바빠서 자주 오지 못했지만 제가 태어난 고향이기에 언제나 그곳에 가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저희가 도착하고 조금 있으려니 형님가족도 도착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많은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도중이었습니다. 저희 형수님께서 “어머니 늘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죄송해요. 제가 생신 선물로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일 때문에 시간도 없고, 마땅한 것도 없어서 그냥 용돈으로 준비했어요.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드시고, 동네 분들한테 한턱 쏘세요” 하면서 언뜻 보기에도 두둑해 보이는 흰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그 봉투를 열고 안에 있는 돈을 세어보시기 시작했는데, 형님네 집안 형편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으나 무려 100만원이나 넣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속으로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저희는 형편이 안 돼서 겨우 20만원 밖에 못 넣었습니다.
그 순간 저와 아내는 멈칫 하게 됐고, 아내도 준비한 봉투를 살짝 뒤로 숨기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금방 용기를 냈는지, “어머님∼ 사실 저희 요즘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해서 저희는 20만원 밖에 준비 못 했어요. 정말로 죄송해요” 이러면서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저는 형님과 비교되는 것 같아 너무 창피했습니다. 속으로 집사람을 원망하며 ‘그러게. 내가 1년에 한 번 뿐인 생신이라고 좀 더 쓰자고 했는데…’ 하면서 투덜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그 날 저녁 올라갈 채비를 하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저를 조용히 부르셨습니다. “너 혹시 형하고 비교된다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거 아니니? 그런데 나는 말이다. 너희 집사람이 늬 형수보다 훨씬 좋단다. 사실 너희 형이나 형수는 일년에 몇 번 설이다 명절이다 그렇게 찾아오는 게 전부잖니. 하지만 늬 집사람은 너 몰래 몇 번 내려와서 밭일도 도와주고, 집안일도 해주고 가고 그랬어. 그리고 한 달 전에 내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큰며느리한테 전화를 했었는데, 걔는 나더러 얼른 병원가보라고 하더라. 하지만 늬 집사람은 부리나케 차타고 와서 나 데리고 병원까지 같이 갔다 왔어. 너한테는 이제껏 말하지 않았다만, 늬 집사람만한 애도 없다. 장가한번 잘 갔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늬 집사람이 꼬박꼬박 한 달에 20만 원씩 용돈 부쳐 주는 거 너 아냐? 나는 그 돈 손도 안 데고 통장에 고스란히 모아놓고 있다. 나중에 나 죽을 때 너희 식구 주려고. 늬들 사는 것도 힘들 텐데 참 고맙다” 하시는데, 내가 정말 속 좁은 남자인 게 후회가 됐습니다.
진정한 효도는 마음으로 하는 효도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그렇게 마음 씀씀이를 예쁘게 쓰고 있는지는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늘 곰 같다고 생각했던 아내, 사실은 여우도 그런 여우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너무 고마워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용히 손을 잡아줬습니다. 아내가 왜 그러냐고 했지만, 저는 그 손을 더 꽉 잡아 주었습니다.
대구 동구 | 장영봉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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