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희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
윤찬희가 한국바둑리그에서 김주호를 만났다. 바둑은 치열한 중반을 지나 어느덧 종반전. 윤찬희는 불리한 형세를 어떻게든 뒤집어보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윽고 고심의 한 수를 두었다.
그런데 그 수를 본 김주호가 윤찬희에게 뭐라 뭐라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본래 대국 시에는 상대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만약 말을 건넨다면 그것은 바둑이 종국 되었을 때 뿐이다.
윤찬희는 김주호가 불계패 의사를 전달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바둑이 좋은 데 왜 던지세요?”
김주호가 뭔 자다가 봉창 두들겨 패는 소리냐는 듯한 얼굴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 팻감 안 쓰고 따냈잖아!”
그렇다. 윤찬희는 패싸움을 하던 중 팻감을 쓰지 않고 상대의 돌을 덜컥 따낸 것이다. 물론 결과는 윤찬희의 반칙패였다.
<실전> 백3으로 는 수에 눈길을 줄 것. 느슨하다고 생각되시는가?
<해설1> 백1로 단수를 쳐 흑을 잡을 수만 있다면 좋다.
그러나 흑은 4·8로 착착 붙이며 12로 살아버린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위험해지는 것은 위쪽 백 일단이다.
내친 김에 <해설2>도 한 번 살펴보자. 백이 그래도 이 흑을 잡아보겠다고 <해설1>의 수순을 비틀어 백1로 치중을 하는 수순이다. 물론 흑은 백이 잇지 않은 2 자리를 끊을 것이다.
자, 어떤가! 백 15까지 백이 축에 걸린다. 복잡하지만 프로라면 이 정도는 쉽게 읽는다. 백이 안 된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다. 천하의 이세돌이라 해도 바둑의 신이 정해놓은 운명의 궤도를 바꿔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7단 1974ys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