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정이넘치는‘711호병실’

입력 2008-09-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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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친정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간병하느라 병실에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병실에는 친정어머니 외에 네 명의 할머니 환자들이 더 계신데, 며칠 전에 새로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이제는 저희 친정어머니까지 병실에 총 여섯 명이 누워계십니다. 새로 오신 분은 다른 할머니들 보다 조금 젊은 편이셨는데, 교통사고로 머리가 아파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이 분이 침대에 누워보시더니, 침상이 너무 높다고 불편해 하셨습니다. 그러자 옆에 계시던 다른 할머니께서 “내꺼가 좀 낮은데, 그라믄 이걸루 바까주까?” 하셨습니다. 침상까지 양보해 주겠다고 하실 만큼 여기 할머니들이 인정이 좋으십니다. 서로서로 걱정해주시고, 챙겨주시고, 얼마나 다정다감하신가 모릅니다. 식사시간에 입맛 없다고 못 드시는 분이 계시면 그게 또 안타까우셔서 “그랴도 쫌 묵어야재! 그래 숟가락 놔 버리면 우야노…” 하시면서 당신 식사하시던 것도 잊어버릴 정도셨습니다. 식사 마치고 몸 불편해 하시는 할머니가 계시면 대신 그릇도 치워주십니다. 물도 떠다주시고, 물리치료실까지 같이 가자고 하면, 동무 삼아 같이 다녀오시곤 하셨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바람 좀 쐬고 오까?” 하면 “그래! 그래! 가자! 가자!” 이러시면서 두 세분이 동무해서 다녀오시기도 합니다. 특히 저녁 드라마 시간만 되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드라마에 빠져듭니다. 며칠 전 새로 오신 분이 드라마 줄거리를 잘 모르셨습니다. 그러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이렇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지금 자가 쟈 신랑이잖아. 그리고 자가 쟈 마누라거든. 그리고 좀 전에 갸는 쟈 언니야. 근데 갸가 진짜로 못땠어.” 그렇게 화면에 사람얼굴이 나올 때마다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해 주십니다. 드라마가 얼마만큼 전개가 됐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 같은지, 그런 얘기까지 줄줄줄 풀어놓으셨습니다. 그러다 주인공이 위급해지자 “에헤이! 클났네! 클났어! 쟈가 저래 나가면 안 된다 카이∼! 쟈가 맨날 저래 가꼬 해꼬지 당하잖아” 이러면서 당신 몸 아프신 건 뒷전입니다. 드라마 주인공 걱정하시느라 애가 타셨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둘러앉아 보는 드라마는 정말 실감나고 재밌습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퀴즈프로그램을 봐도 그렇고, 뉴스를 봐도 그렇습니다. 다같이 둘러앉아서 보면 별 거 아닌 것도 참 재밌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제가 “엄마 이제 나 집에 갈게요. 내일 또 올 테니까 몸조리 잘 하세요” 하고 일어서면 저희 친정어머니가 ‘잘가라’ 하시기도 전에 다른 할머니들이, “아이고∼ 딸래미가 고생했네∼ 얼른 드가 쉬어∼” 이러면서 먼저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마치 제가 이 모든 할머니의 자식이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어느덧 이 곳 병실에서 여름을 보내고, 입추도 지내고, 말복도 넘겼습니다. 그러는 사이 지난번에 풀 베다가 손가락이 잘려서 봉합수술 받으신 할머니 한 분은 퇴원을 하셨습니다. 저희 친정어머니도 허리가 아프셔서 왔다가 지금 많이 좋아지셔서 곧 퇴원을 하실 것 같습니다. 문제는 할머님들하고 병실 계시는 걸 엄마가 너무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퇴원하시기 전까지 이곳에서 많이 웃고 재밌게 지내다가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엔 라디오를 가지고 가서 오전의 무료함을 달래드려야겠습니다. 711호 병실에 계신 할머니들 모두 꼭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대구 수성 | 정현주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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