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멋부리다얼어죽는다

입력 2008-09-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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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행마라고 하여 반드시 세련미가 넘칠 것이라는 기대는 갖지 말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물론 프로의 행마는 확실히 아마추어의 행마에 비해 세련되어 보인다.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다. 바둑판 위에서 돌이 반짝 반짝 빛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프로가 아마추어와 궁극적으로 다른 점은, 프로는 ‘폼’을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기력에 자신이 있다 싶은 아마추어들은 대체로 행마에 ‘겉멋’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어딘가 모르게 고수의 냄새를 풍기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이런 멋 부리기가 종종 바둑을 망쳐놓는다는 사실이다. 꾹 이어두면 될 것을 괜히 날일자 잇기로 멋을 부리다가 허리가 부러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칸 벌려야 할 곳을 두 칸 벌려놓았다가 양곤마로 찢어져 허덕이다 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로 보아 왔다. 그러나 프로는 다르다. 프로의 세련된 행마는 그 세련됨이 승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길 수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빈삼각을 두고 2선을 포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프로이다. 프로들은 ‘멋 부리다 얼어 죽는다’란 옛말을 숱한 실패와 패배를 거쳐 체화시킨 사람들인 것이다. <실전> 흑4는 놀랍다. 프로라면 ‘절대!’ 두지 않는 조악한 행마이다. 보통이라면 <해설1> 흑1·3 정도일 것이다. <실전> 백5도 수상하다. 어쩐지 흑4에 장단을 맞춰 준 느낌이다. <해설2> 백1∼5까지가 적절해 보인다. <실전>보다 낫다. 바깥쪽 흑에게는 단점도 남는다. <실전>은 백5로 둔 탓에 백이 완벽하게 봉쇄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흑4의 ‘둔한 행마’가 통한 셈이다. 물론 흑4에 대해 표를 던질 마음은 없지만.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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