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희망을심자]다문화가정희망을쏘다뮤지컬배우소냐

입력 2009-01-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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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직업군은 ‘지휘자’라고 한다. 지휘는 몸과 마음이 저절로 긍정적인 운동이 되는 특수한 일이란다. 여기 한 가지 추가될 장수 직업이 있다. 뮤지컬 배우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춤이면 춤… 3박자에 몸을 맡기면, 희망의 비타민을 절로 섭취하지 않을까? 마음이 힘들 때 춤과 노래는 꿈이 되고 위로가 된다. 가수 소냐가 그렇다. 남들과 달라 힘들었던 10대를 보내고, 20대 뮤지컬배우로 데뷔했다. 뮤지컬은 그에게 딱 들어맞는 옷이었다. 그의 5집 앨범 이름이자, 그가 루시를 연기하며 부르는 ‘지킬 앤 하이드’의 ‘새로운 인생(A New Life)’ 노래처럼 새 삶을 살고 있다. 연예인들이 대거 뮤지컬 무대에 발을 들이는 때, 유일하게 실력에 있어 왈가왈부되지 않는 가수 출신 뮤지컬 배우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고음과 저음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화려한 음색은 뮤지컬 팬들을 사로잡았다. 소냐는 스페인계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의 딸이다. 그러나 어릴 때 주한미군 아버지는 한국을 떠났고,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린 시절 대구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왔다. 그의 타고난 신체 조건은 뮤지컬 무대에서 빛을 발한다. 힘든 과거가 도리어 그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만큼, 아픔을 이해하는 감성이 풍부해져 연기는 말 할 것도 없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타고난 목소리와 외모 등 끼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2009년 새해, 뮤지컬 배우 소냐의 ‘희망 바이러스’를 3색 행복 제안으로 스포츠동아 독자들에게 공개한다. 3色 희망 바이러스 첫 번째… 가족에 대한 감사 소냐(30)는 어릴 적에 서른이 되면 가정을 꾸려 아이는 2명 정도 낳았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27∼28살 즈음엔 지나가는 유모차만 봐도 미치겠고… 심지어, 길가다 아기 신발을 사서 집에 놓기도 했다”고 말했다. 소냐는 어린시절부터 예쁜 엄마, 아내가 되고 싶었나보다. 그는 1999년 발라드 ‘너의 향기’로 가수로 데뷔한 직후, 가정사가 언론에 공개됐다.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뒤 외할머니와 둘이 대구에서 살아온 얘기였다. 아나운서 박나림과 개그맨 남희석이 진행했던 ‘꼭 한번 만나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에서는 2003년 11월 7일, 그가 흑인 아버지를 상봉하는 장면을 첫 회 방송으로 내보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가수가 됐다는 소냐’, ‘소냐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제작진은 소냐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 머나먼 미국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소냐’ 등으로 감동스토리로 전파를 탄 것이다. 이후 NFL 스타 하인즈 워드의 방한이나 다문화 가정을 다룰 때면 종종 그의 인터뷰를 함께 볼 수 있었다. 뜻밖에도 소냐는 “아버지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모른다. 그때도 찾을 생각이 그다지 없었다. 기획사와 방송사의 권유였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데뷔 당시 ‘가요계의 흑진주’라는 수식어도 너무나 싫었다고 한다. 굳이 그를 특이한 존재로 부각시킨 게 오히려 버겁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TV가 아닌 뮤지컬 무대에 서면서 그는 힘든 과거를 초연한 듯 했다. 아버지를 잊은 것만도 아니다. 2006년 그는 미국에서 창작뮤지컬 ‘마리아마리아’를 공연했다. 이 작품은 ‘뉴욕뮤지컬씨어터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으로 초대돼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소냐에게 닥친 힘든 시간이었다. ‘마리아마리아’는 그에게 작품으로서나 종교적으로 위안을 줬다. 소냐는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던 당시를 추억하며 아버지를 생각했다. “미국 가서 쇼핑하러 배우들끼리 다니는데, 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안 두는 것이다. (웃음) 모두들 놀랬다. 서울에서 연습하고 그럴 때는 나의 푼수 같은 모습을 보고 ‘여자가 그래서 시집가겠냐?’고 그랬는데, 거기 가니 내 세상 같았다. 사람들 시선이나 그런 게 거부감이 없었다. 거의 내 세상 같았다. (웃음) 아버지께 좋은 목소리를 물려받아서 그 목소리를 많이 좋아해 주셨다. 그때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는데, 플러스된 시간이 됐고, 나는 너무 예뻤다”고 회상했다. 3色 희망 바이러스 두 번째… 마음이 편해지는 솔직 무대 위에서는 각본 그대로 연기를 선사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자연인 소냐로 돌아간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다. 가식도 없다. 무대 밖에서는 바로 가면을 벗는다. 마리앙트와네트 여왕의 탈을 쓴 콩쥐 같았다. 본인의 매력이 무엇인지 꼽아달라는 말에도,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솔직함”이라고 말했다. 소냐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솔직함’은 그저 소냐가 말하지 않아도 그대로 느껴지는 장점이었다. 소냐는 2006년부터 소속 기획사와 계약을 끝내고, 혼자 일하고 있다. 도리어 이런 생활이 소냐는 더없이 자유롭다. “원하는 작품이 생기면, 오디션을 마음대로 보러 다닐 수 있고… 그런 해방감 때문에 2008년 내내 진짜 행복했다.” 소냐는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공연장을 오가면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누군가는 가수 소냐를 기억해서, 누군가는 뮤지컬 배우 소냐를 알기 때문에, 또 누군가는 무리 속에서 튀는 ‘예쁜’ 얼굴 때문에 흘깃흘깃 그를 훔쳐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소냐는 “가수할 때 보여드리지 못한 게 많았는데, 지금은 숨길 게 없다. 대중적인 모습을 많이 드러내기 때문에 좋다”고 했다. 3色 희망 바이러스 세 번째… 웃음 피어나는 감성 “요새는 계속 핑크색에 끌려서…” 소냐는 핑크 공주다. 핑크색이 급격히 좋아졌다고 한다. 옷이든 액세서리든 핑크빛을 애용하는 사람은 애정이나 감정이 철철 넘치는 사람이다. 핑크색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어서, 어린이들 방을 핑크 계열로 장식하는 일도 많다. 가수 소냐는 핑크색 한복 치마를 입고 꽤 만족스러워했다. 사진 기자의 카메라로 한복 입은 모습을 확인하면서 “볼 살 통통한 것 봐라. 사투리가 절로 나오려고 한다”면서 실망 했다가, “결혼할 때가 됐나보다. 이런 색깔 한복을 사면 괜찮겠느냐?”고 호탕하게 웃기도 했다. 한복을 난생 처음 입는다는 소냐는 도도해 뵈는 얼굴과 달리 계속 웃는 웃음 바이러스에 중독된 것 같았다. 소냐는 올해도 뮤지컬 꿈에 부풀어 있다. 안중근의 일생을 그린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을 짝사랑하는 중국 여인 ‘링링’도 무척 하고 싶다. 꾸준히 뮤지컬 배우로서 도전하고, 새로운 작품도 직접 고를 생각이다. 무엇보다 관객과 소통하고 표현하는 느낌이 남다르기에 뮤지컬 사랑은 계속된다. 소냐는 관객이 감동받으면 그 감동의 곱절은 더 느낀다고 한다. 그 충만한 감동을 안고 가는 게 행복의 비결이었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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