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피플]어경준“박주영의성공비결은영리함”

입력 2009-01-12 18: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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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지난 2008년 12월의 끝자락.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 한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한국축구의 미래를 만났다. 보통 ‘한국축구의 미래’란 수식어가 적합한 선수를 꼽는다면, 지난해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맹활약을 펼친 ‘88년생 동갑내기’ 기성용과 이청용(이상 FC서울)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축구팬들이 많겠지만, 이들보다 먼저 축구 관계자들에게 가능성을 인정받은 선수가 있었다. 2002년 대한축구협회(KFA)에서 실시한 우수선수 해외유학 1기에 뽑혀 양동현, 강진욱, 김동민과 함께 프랑스 리그1 FC메츠의 유소년팀으로 축구 유학을 떠났던 어경준(22)이다. 가장 먼저 7년여 간의 프랑스 생활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어경준은 재미난 에피소드가 생각난 듯 피식 웃음부터 터뜨렸다. “프랑스 사람들은 강아지를 많이 키우는데, 잔디가 깔린 공원에서 뛰어 노는 족족 강아지 똥을 밟았다. 프랑스하면 똥 밟은 기억 밖에 없다.” 이렇게 어경준이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던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학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비롯해 함께 유학길에 올랐던 선수들이 군문제와 현지적응 실패로 한국으로 떠나버린 탓에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어린 어경준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어경준은 그 때마다 자신을 채찍질했다. 최종목표로 세운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묵묵한 뒷바라지는 그에게 더없는 큰 힘으로 작용했다. “학업과 운동 그리고 집, 반복적인 일상 속에 무료함도 느꼈으며 친구들과 떨어져 외로움도 많이 탔다. 그러나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힘들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이때 어경준이 외로움 탈출 방법으로 삼은 것은 팀 동료 사귀기였다. 당시 어경준은 어눌하지만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 술레이마네 마맘(23.세네갈), 줄리앙 튀르노(25.프랑스)와 친분을 쌓았고, 요즘에는 집으로 초청해 밥도 같이 먹는 사이가 됐다. 어경준이 소속되어 있는 메츠는 많은 유럽구단 중에서도 일찍이 장래가 촉망되는 유망주들을 양성하는 집합소로 정평이 나 있는 팀. 어경준은 그동안 보고 듣고 느낀 유스 시스템에 대해 “선수를 키워서 파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유럽 유스 시스템은 가히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어려서부터 경쟁의식을 고취시키며 성장세가 더디다고 판단되면 단칼에 내친다”고 설명했다. 해외진출을 바라는 꿈나무 선수들에게 ‘철저한 준비’를 당부한 어경준은 AS모나코에서 성공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박주영을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꼽았다. “우선 기본기가 좋고, 높은 골 결정력과 위치선정이 탁월하다. 특히 박주영이 유럽에서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영리한 플레이 덕분이었던 것 같다. 같은 공격수로서 닮고 싶은 선수”라며 칭찬일색이었다. 이어 어경준은 한국축구와 유럽축구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한국은 스피드와 기본기를 중시하는 반면 유럽은 파워, 경기속도, 전술을 강조한다. 많은 차이가 나지 않지만, 각 리그에 맞춰 빠른 적응이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나긴 테스트를 마친 어경준은 2007년 FC메츠 1군과 정식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괴롭혀온 습관성 어깨 탈골 수술을 받고 재활에 몰두할 때쯤 소속팀이 2부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을 겼었다. 그래서 어경준은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지난해 7월 프로축구 성남일화에 1년간 임대돼 한국 축구무대를 경험한 것. 성남의 성적부진으로 시즌 내내 2군에 머물렀지만, 프랑스리그에서 느끼지 못한 K리그만의 매력 속에 빠져들었다. 그는 “K리그에 관심이 있었던 찰나 성남에서 임대제의가 들어와 흔쾌히 수락했다. 이후 3개월 동안 2군 경기에 나서면서 K리그 환경에 적응했다. 가장 재미있게 축구를 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K리그가 종료된 후 어경준은 누구보다 빨리 몸만들기에 돌입했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선수들과 함께 동계훈련을 착실히 수행하면서 남은 7개월 여의 임대기간 동안 뭔가 보여주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대적인 팀 개편을 단행하고 있는 성남의 주전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난 시즌 피부로 실감했다. 그는 “체력, 스피드, 돌파 등 아직 보완할 점이 많다. 또 신태용 신임 감독님 체제로 팀이 바뀐 이상 감독님의 주문과 내 기량을 접목시켜 성남의 명가재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기축년(己丑年), 1군 합류를 목표로 하고 있는 어경준은 현재 성남의 1차 전지훈련 장소인 전남 광양에 소집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K리그 개막에 몰두하고 있다. 어경준은 “나의 최종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항상 성실함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한다면 언젠가는 왼쪽 가슴에 태극마크를 다는 그 날이 올 것이다”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김진회 기자 manu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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