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불문율’을깨뜨려라

입력 2009-01-13 14: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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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율 [不文律]’ 사회 어느 곳에나 어떠한 상황에서는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으로 동의 된 것이 있다. 이를 불문율이라고 한다. 야구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100년이 넘은 야구의 역사 속에서 선수와 팬 모두에게 불문율의 대표 격으로 각인 된 두 가지 플레이는 ‘퍼펙트게임과 노히트 노런 게임에서의 기습 번트’와 ‘큰 점수차의 리드 속에서 행하는 도루’ 정도를 들 수 있다. 2001년 5월 28일(현지시간) 당시 압도적인 구위로 랜디 존슨과 최강의 ‘원투 펀치’를 구성하고 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커트 실링은 8회 1사까지 단 한명의 타자도 출루 시키지 않으며 퍼펙트게임을 앞두고 있었다. 이때 타석에 들어선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벤 데이비스는 투수키를 넘기는 기습 번트로 실링의 퍼펙트게임을 깨뜨렸고, 결국 실링은 3-1의 완투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실링은 “어이가 없다. 무슨 사고방식인지 모르겠다”라며 황당해 했고, 애리조나의 감독 밥 브렌리 감독 또한 “아직 어려서(벤 데이비스는 그 당시 24살) 배워야 할 것이 많다”며 퍼펙트게임을 깨뜨린 데이비스를 비난했다. 이에 데이비스는 “살얼음판 승부였다. 내가 출루하고 후속타자 버바 트러멜이 홈런을 치면 동점이라 그렇게 했을 뿐이다” 라는 말로 응수했다. 당시 미국 현지와 국내 메이저리그 팬들의 대다수는 데이비스의 플레이를 비난했다. 하지만, 데이비스의 플레이는 정말 잘못된 것이었을까? 퍼펙트게임이란 것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대 기록이고, 실링 본인에게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업적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란 것은 본질적으로 ‘승리’를 추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데이비스는 팀이 패배할 위기에 몰린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 빈볼이나 사인 훔치기 같은 비신사적인 플레이를 한 것이 아닌, 정상적인 플레이중의 하나인 기습 번트를 댓을 뿐이었다. 과거 1950~60년대 샌디 쿠팩스와 함께 LA 다저스의 황금시대를 개척한 투수인 돈 드라이스데일은 빈볼을 주무기로 삼는 투수였다. 타자의 머리를 공략해 몸쪽 공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놓은 뒤, 바깥쪽 낮은 공을 던져 타자를 아웃시키는 것이 드라이스데일의 특기 중 하나였다. 타자의 머리를 향해 시속 150km에 이르는 강속구를 던지던 투수를 ‘영웅’으로 기억하고,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기습번트를 댄 타자에게는 ‘퍼펙트게임을 가로채간 도둑’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두 번째 불문율은 ‘큰 점수차의 리드 속에서 행하는 도루’ 다. 과거 1980년대 관중 문화가 성숙되지 않은 시절의 한국 프로야구에서 크게 앞서고 있는 원정팀이 도루를 시도해 2루 혹은 3루를 훔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그 즉시 경기장으로 오물이 투척되곤 했다. 하지만, 큰 점수차의 리드를 잡은 팀이 도루를 하면 상대팀을 조롱하는 비신사적인 행위라는 불문율은 이치에 맞는 것일까? 타임아웃이 없는 야구에서 ‘극적인 역전’으로 승부를 뒤집은 예는 얼마든지 있다. 2001년 8월 5일(현지시간) 당시 신인이었던 일본인 타자 이치로 스즈키를 필두로 메이저리그를 지배하고 있던 시애틀 매리너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는 이와 같은 불문율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임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선발 투수로 나선 데이브 버바가 대량 실점을 하며 7회 초까지 2-14로 뒤져 패색이 짙던 클리블랜드는 주전 타자들을 대거 벤치로 불러들이며 경기를 포기하려고 했다. 7회와 8회 무려 7득점을 하며 9-14까지 추격했지만, 시애틀의 불펜에 당대 최고의 위력을 떨치던 아서 로즈, 제프 넬슨, 사사키의 ‘불펜 트리오’가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시애틀의 역전패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때부터였다. 9회 말 2아웃 이후에 2점을 더 얻어 11-14까지 추격한 클리블랜드는 2사 만루의 찬스를 잡았고, 뭔가 일이 터질 것만 같은 상황에서 타석에 등장한 오마 비스켈이 동점 3타점 3루타를 터뜨리면서 경기를 14-14 원점으로 돌려놓은 것.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클리블랜드는 연장 11회 말 홀버트 카브레라의 좌전 적시타 때 케니 로프턴이 홈을 밟아 1925년 이후 76년 만에 나온 ‘12점 차’ 역전승을 완성 시켰다. 한 팀당 1년에 162경기를 치루는 메이저리그에서도 76년 만에 나온 ‘12점차의 역전승’을 예시로 든 것이 조금은 무리일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가 남긴 명언인 ‘It ain′t over til it′s over′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을 떠올린다면, 이미 승부가 갈렸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리드 하고 있는 팀이 행하는 도루 역시 단지 더욱 확실하게 팀의 승리를 확정 짓기 위한 플레이의 하나로 봐야 할 것이다. 조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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