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피플]까브드뱅유안근사장,막걸리집아들이와인비즈니스

입력 2009-02-04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역경딛고와인‘3관왕’잡았죠
코망드리 기사단, 쥐라드 기사단, 슈발리에 뒤 타스트뱅 기사단. 와인을 좋아하고, 와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받고 싶은 명예로운 기사 작위다. 와인수입사 ‘까브드뱅’의 유안근 사장(56·사진)은 2001년 코망드리, 2003년 쥐라드에 이어 2008년 슈발리에 뒤 타스트뱅 기사단까지 선임되며 ‘3관왕’을 달성했다. “나한테 고마웠습니다. 22년간 안 죽고 와인 비즈니스를 했거든요. 머천트로서 치열하게 긴 세월 동안 있으면서 차돌같이 단단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영광은 짧고 고통은 굉장히 길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 말하고 싶습니다. 열정이 있으면 꼭 보답이 있다는 것을.” 경남 진주에서 막걸리 양조장을 한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982년 대한선주(현 한진해운) 샌프란시스코 현지법인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와인을 접했다. 처음에는 샤도네이가 뭔지조차 몰랐을 정도로 문외한이었지만 와인의 매력은 그를 끌어당기기 충분했다. “당시 비즈니스를 할 때 샤도네이를 마셨는데 향과 느낌이 좋았습니다. 포도주는 다 샤도네이인가 보다고 생각했죠. 샤도네이가 뭔지, 품종이 뭔지 모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때부터 와인을 마셔 지금도 편안한 사람들과 마실 때는 캘리포니아 샤도네이를 가장 좋아합니다.” 와인이 비즈니스가 된다고 믿은 유 사장은 4년간의 직장 생활을 뒤로 하고 1987년 대유수입상사를 차린다. 출발은 좋았다. 와인과 함께 위스키 ‘커티샥’을 수입해 시장 1위를 만들었다. 하지만 대형 외국 주류 기업이 국내 현지법인을 만들어 자본력을 바탕으로 외상을 많이 주기 시작했고 많이 팔면 팔수록 돈이 돌아오지 않는 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회사를 넘기고, 1994년 현재의 까브드뱅을 차린다. “그 때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실패하면 돈만 잃는 게 아니라 명예까지 잃는다는 것을요. 까브드뱅을 차리고 초심을 찾기로 했습니다. 회사명이 ‘양조장’이라는 뜻인데요. 와인 사업만 하겠다고요.” 한국 와인 수입 시장에서 매출 규모는 7∼8위 정도지만 ‘최고의 와인상’임을 자부하고 계속 그 길을 지향한다.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국제적인 금융 위기 상황에서 와인수입사들의 상황 또한 비슷하다. 하지만 유 사장은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올해 들어 그는 오히려 직원들에게 월급 인상을 약속했다. “경기는 항상 사이클이 있습니다. 밑에 골이 있으면 꼭 리바운드가 있어요. 와인은 롱 텀 비즈니스입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윤리 경영이 필요하고, 이를 이어가다 보면 절망적인 것은 아니에요.” 이 같은 믿음에는 IMF 때 돈을 번 경험이 뒷받침하고 있다. 1996년 국내 와인상 가운데 처음으로 와인 선물환을 시작한 그는 오르넬라이야, 펜폴즈 그랜지, 안젤로 가야, 퐁테 카네, 딸보. 피작 등 쟁쟁한 와인들을 사들였고, 다음 해인 1997년 10월 IMF가 터진다. 신라호텔을 비롯해 최고의 와인레스토랑에 납품하던 그 또한 다른 기업처럼 폭등한 환율 때문에 위기를 맞았고, 수입한 와인을 반품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행운의 천사가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와인을 모두 반품하려는 상황인데 일본의 한 와인수입상이 소믈리에를 데리고 왔어요. 일본은 당시 경기가 좋았으니까요. 우리가 갖고 있는 와인을 6병 마셔보더니 몽땅 가져갔죠. 옛날 100원이던걸 환율로 인해 140원을 받고 팔았어요. 95년 산 딸보도 세 배 정도 받고, 영국으로 다 팔았고요. 이렇게 하니까 큰 돈을 쥘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와인을 사랑한다. 와인을 통해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점이 그 매력이다. 그는 분에 넘게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그가 오늘도 와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이유다. 글·사진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