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가 넘어선 시각, 아내는 “걱정 안 해요”라며 짐짓 웃어보였다. 하지만 결승선 초입에 서 있는 그는 자꾸만 고개를 멀리 빼 달려오는 선수들을 응시했다.
출발한 지 벌써 8시간. 동호인 선수들 중 선두 그룹은 골인한 지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제는 한 명씩 띄엄띄엄 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4시가 거의 다 된 시간. 남편이 뛰어왔다. 빨리 걷는 것 같기도 했다.
표정은 새벽 4시에 아내가 차려주던 밥을 먹을 때처럼 밝은 모습이었다. 둘은 손을 맞잡고 결승선까지 30m 남짓을 함께 뛰었다. 함께 올라온 동호회원들은 박수를 쳤다.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부의 표정을 보고 그냥 웃었다. 결승선을 통과한 이들은 서로를 안고 이내 서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거친 도전 드라마의 결말 속에서 사랑을 확인한 주인공은 김세형(49), 구종남(43) 부부다. 김 씨는 하이원 국제트라이애슬론 대회에서 완주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 구종남 씨는 공식 심판으로 수영과 사이클 바꿈터에서 참가자들을 감시했다.
평범한 주부인 구 씨가 트라이애슬론 심판까지 하게 된 이유는 남다르다.
2004년 10월 평소 암벽 등반을 취미로 하던 남편은 부산의 금경산에서 훈련 후 하산 도중 추락 사고를 당했다. 엉덩이 뼈는 반으로 갈라졌고 오른쪽 발뒤꿈치는 다 깨졌다. 병원에서는 물리 치료와 함께 의족 착용을 권했다. 부부는 고민 끝에 병원을 떠났다. 남편은 믿었다. 첫째 아들이 권한 트라이애슬론의 힘 그리고 부인의 정성을.
절뚝거리는 발로 남편은 수영을 했고 앞산을 넘었다. 사고 발생 1년이 지난 2005년 9월 남편은 울산 트라이애슬론대회에 출전해 완주를 했다. 기록은 나빴지만 결승선을 밟은 것 자체로 부인은 가슴이 벅찼다.
그 후 남편은 30회에 이르는 트라이애슬론에 출전해 완주했다. 대회마다 남편을 따라다니던 부인은 제대로(?) 남편을 보살피고자 올해 3월 대한트라이애슬론연맹이 수여하는 3급 심판 자격증을 땄다.
부인은 이번 유방암 수술을 받는다. 2005년 병을 앓게 된 후 4년 넘게 투병 중이다. 남편은 자기 때문에 속병을 가진 부인이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다.
“부인이 수술 받고 싹 나았으면 좋겠어요. 오늘 완주가 큰 힘이 되길 바랍니다.”
정선 I 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