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의리버스토크]‘르네상스적스타’와오지랖넓은스타의차이

입력 2009-10-06 0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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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영화감독 존 카펜터. 호러 무비의 고전이 된 ‘할로윈’을 비롯해 ‘더 포그’ ‘괴물(더 씽)’ ‘뉴욕 탈출’ 등의 영화를 연출한 B급 호러와 액션 영화의 대가이다.

그런데 인터넷 영화정보데이터베이스 ‘IMDB’에서 존 카펜터를 검색해 보면 감독 뿐 아니라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 편집자, 작곡가, 음향 음악담당, 연기, 심지어 카메라 및 전기 파트 등 영화의 온갖 분야에서 활동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존 카펜터는 자신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중 상당수 작품의 음악을 작곡하거나 아니면 편곡했다.

살펴보면 이처럼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가진 인물들이 꽤 많다. 환상적인 이야기로 영화팬을 매료시킨 ‘오픈 유어 아이스’와 ‘디 아더스’의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역시 자신의 영화 시나리오는 물론 메인 테마 음악까지 작곡하는 재주꾼이다. 그런가 하면 ‘반지의 제왕’에서 아라곤을 연기한 배우 비고 모텐슨은 시인과 사진작가로도 지명도가 높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 두루 재주를 지닌 인물을 우리는 요즘 ‘르네상스적 인간’이라고 부른다. 눈을 국내로 돌려보면 ‘르네상스적 인간’이란 수식어가 딱 맞는 스타가 바로 구혜선이다. 인터넷 얼짱으로 처음 이름을 알리더니, 연기, 음악, 영화, 그림, 책 등 여러 분야에서 전천후로 활동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밖에 에픽하이의 타블로나 패닉 출신의 이적도 음악적인 재능 못지않게 작가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또한 연예계 인물은 아니지만 패션 디자이너와 영화 아트 디렉터로 유명한 정구호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쿠킹 스쿨 ‘코르동 블루’를 수료한 ‘푸드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상에는 꼭 이런 르네상스적 천재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자기 본업에서도 제대로 인정을 못받으면서 이곳저곳 여러 분야에 얼굴 내미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일부 연예인들도 있다.

10년 넘게 늘 똑같은 연기만 보여주면서도 연기 개발을 위한 노력보다는 매스컴의 관심이 쏠리는 각종 행사나 모임에 참석하는데 더 정성을 쏟는 연기자, 제대로 된 히트곡 나온지 언제인지 가물가물한데 경력만 앞세워 온갖 프로그램에 무차별로 등장해 ‘어른 대접’만 받으려는 일부 중견 연예인들.

또 있다. 책 내고 음반 발표하고 연기와 방송까지 온갖 분야를 섭렵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가 무얼 하는지 잘 모르는 이름만 ‘멀티-엔터테이너’인 이들.

그리고 연기나 음악 활동은 가물에 콩나듯 하면서 각종 파티나 명품 브랜드 론칭 행사에는 지극 정석으로 꼬박꼬박 참석하는 자칭 ‘스타’들. 이들에게는 사실 ‘르네상스적 인간’ 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옛 말이 있다. ‘괜히 오지랖만 넓다’는 말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P.S. 99년 당시 새 영화 ‘슬레이어’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존 카펜터 감독을 LA에서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에게 왜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는지 물어봤다. 카펜터 감독의 대답은 단순하지만 분명했다. “난 영화를 무지 좋아해. 그런데 그냥 연출만 하면 재미없거든.”

엔터테인먼트부 부장 |oldfiel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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