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미켈슨(왼쪽) 타이거 우즈.
PGA 투어 세계 랭킹 1,2위의 동시대 최대 라이벌이다. 소수계와 백인이라는 점이 80년대 NBA를 살찌게 한 두 주역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를 닮았다.
오늘날 NBA가 글로벌 스포츠로 최고 인기를 누린 데는 흑백을 대표한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의 라이벌전에 이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출현이 결정적이었다. 최근 존슨과 버드는 함께 자서전 ‘When the game was ours’를 출간해 다시 한번 주목을 끌고 있다.
사실 스포츠에서 라이벌전이 없다면 흥미를 끌지 못한다. 절대 지존도 라이벌이 있기에 더 노력하고 정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특히 개인종목 골프는 라이벌전의 연속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국에서 골프는 아놀드 파머의 프로 데뷔로 대중화됐다는 게 정설이다. 파머가 ‘아니의 군단’으로 통하는 구름 갤러리를 몰고 다닐 때 나타난 도전자가 ‘황금 곰’ 잭 니클러스다. PGA 투어는 60년대 파머와 니클러스의 라이벌전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여기에 가세한 게 남아공화국의 개리 플레이어다. 이후 PGA 투어는 트로이카 체제를 형성했다.
파머가 하락세를 걸으면서 니클러스와 플레이어가 70년대를 사실상 양분했다. 하지만 둘은 파머-니클러스와 같은 치열한 라이벌 관계는 아니었다.
80년대 들어 니클러스의 대항마로 나타난 선수가 톰 왓슨이다. 길지는 않았지만 니클러스-왓슨도 80년대를 풍미한 라이벌이다.
90년대는 뚜렷한 라이벌전이 눈에 띄지 않았다.
2000년대가 되면서 PGA는 우즈-미켈슨 라이벌 구도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프로 데뷔는 미켈슨이 우즈보다 4년 앞서지만 둘이 세계 랭킹 1,2위를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흑백 라이벌전은 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미국에서는 풋볼 시즌이 시작되면 골프는 뒷전으로 밀린다. 그나마 지난 달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세계 연합팀의 프레지던츠컵이 끝난 뒤 팬들의 주목을 끌 만한 대회가 8일 상하이에서 막을 내린 유럽투어 월드골프챔피언십 HSBC 대회였다. 둘의 출전으로 대회는 명불허전이 됐다.
둘은 최종 라운드 마지막 조에 편성돼 이상적인 카드를 만들었다.
올해 둘이 마지막 날 같은 조에 편성되기는 4월 마스터스 대회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이 때는 둘이 우승권에서 멀어져 최종 라운드 마지막 조는 아니었다. 최종 라운드 마지막 조는 2007년 페덱스컵의 도이치방크 챔피언십 이후 처음이었다.
이번 HSBC 대회는 미켈슨에게 설욕전이 됐다. 둘의 명승부 가운데 하나였던 2005년 도랄오픈에서 미켈슨은 우즈에게 최종 라운드에서 1타 차로 역전패를 당한 적이 있다. 최종 라운드 마지막 조에서 동반 라운딩을 한 우즈는 6언더파 합계 24언더파 264타, 미켈슨은 3언더파 합계 23언더파 263타로 2위에 머물렀다.
올 HSBC에서는 미켈슨이 5타 차로 우즈를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둘은 라이벌이면서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지난 해 우즈의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가 미켈슨에게 험담을 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3라운드가 끝난 날에도 클럽하우스에서 스코어 카드를 정리하고 나온 미켈슨이 우즈의 입장을 알면서 모른척하며 외면하는 데서도 냉랭한 기류를 감지할 수 있었다.
존슨-버드, 파머-니클러스, 니클러스-왓슨의 관계는 라이벌을 떠나 흉금을 털어 놓는 절친한 친구 사이다. 우즈와 미켈슨에서는 아직 이런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훗날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 친구가 되서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LA | 문상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