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P 뉴시스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배우 발 킬머, 그의 영화 인생을 되돌아보다
‘도어즈’ 짐 모리슨부터 ‘히트’의 강도까지… 살아 숨 쉬는 캐릭터의 향연
킬머를 킬머답게 만든 명대사, 그리고 명장면들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 발 킬머가 2025년 4월 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폐렴 합병증으로 향년 65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2015년 후두암 진단 이후 긴 투병을 이어온 그는 2021년 암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그 후로도 건강은 회복되지 못했다.‘도어즈’ 짐 모리슨부터 ‘히트’의 강도까지… 살아 숨 쉬는 캐릭터의 향연
킬머를 킬머답게 만든 명대사, 그리고 명장면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발 킬머는 독특한 존재감과 인상적인 대사로 수많은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그의 연기 인생을 대표하는 다섯 작품과 함께 기억에 남는 장면과 대사를 되짚어본다.
1. ‘탑 건’(Top Gun, 1986)
발 킬머의 이름을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작품이다. 그는 전투기 조종사 톰 ‘아이스맨’ 카잔스키 중위를 연기하며, 주인공 매버릭(톰 크루즈)과 긴장감 넘치는 경쟁 구도를 이끌었다. 영화 말미, 아이스맨이 매버릭에게 건네는 대사 “You can be my wingman anytime.”(언제든 내 윙맨이 되어줘)은 두 사람의 화해와 우정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지금도 회자된다.2. ‘도어즈’(The Doors, 1991)
올리버 스톤 감독의 전기 영화로, 발 킬머는 록 밴드 도어즈의 보컬 짐 모리슨 역을 맡았다. 그는 실제 공연 영상과 인터뷰를 수없이 참고하며 모리슨의 목소리, 제스처, 말투까지 정교하게 재현했다. 총 15곡에 달하는 도어즈의 노래를 직접 부르며 무대 위의 짐 모리슨을 완벽히 소환했고,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3. ‘툼스톤’(Tombstone, 1993)
서부극의 진수를 보여준 이 영화에서, 발 킬머는 병색이 짙은 전설적 총잡이 ‘닥 할러데이’로 분했다. 그의 위트 있고 냉소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는 명대사 “I’m your huckleberry.”(내가 바로 너의 상대야)는 영화 팬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명장면으로 남았다. 총을 겨누는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연기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4. ‘히트’(Heat, 1995)
마이클 만 감독이 연출하고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출연한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킬머는 강도단의 일원 ‘크리스 시헐리스’ 역을 맡았다. 그는 냉철한 프로 범죄자이면서도 가족에 대한 애착을 놓지 않는 복합적인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특히 로스앤젤레스 도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총격전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으로 꼽힌다.5. ‘키스 키스 뱅 뱅’(Kiss Kiss Bang Bang, 2005)
사설 탐정 ‘게이 페리’ 역으로 분한 킬머는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발휘하며 새로운 연기 영역을 개척했다. 그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빠른 대사와 블랙코미디의 절묘한 균형을 보여줬다. 극 중 그가 주인공에게 내뱉는 “Look up ‘idiot’ in the dictionary. You know what you’ll find? The definition of the word idiot, which you f***ing are!”(‘멍청이’를 사전에서 찾아봐. 뭐가 나오는 줄 알아? ‘멍청이’라는 단어 정의야. 바로 너지!)라는 대사는 그의 유쾌하고도 날카로운 연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발 킬머는 외모나 스타성에 기대지 않고, 캐릭터에 몰입해 그 자체가 되어버린 배우였다. 후두암 투병으로 목소리를 잃은 후에도 목소리를 인공지능으로 복원해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고, ‘탑 건: 매버릭’에서는 톰 크루즈와 함께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목소리를 잃어도 존재감을 잃지 않았던 그의 연기는, 시간이 지나도 스크린 위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