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스토리 IN 스포츠] 김상현-유미현 부부 “부부싸움만 하면 홈런, 신기하죠?”

입력 2010-01-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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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동아스포츠 대상 먹었어” 김상현-유미현 부부는 지난 8년간 사랑의 힘으로 부상과 부진 그리고 갑상선암을 함께 이겨냈다. 지난 연말 동아스포츠 대상 시상식에서 야구 부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뒤 다정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스포츠동아 DB]

①김상현-유미현 부부
사랑은 아름답다. 하지만 때론 잔혹하다. 사랑은 뜨겁다. 하지만 때론 차갑다. 사랑의 고통까지 보듬을 줄 알아야 진정한 사랑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법. 그래서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드라마틱하다. 고독하고 험한 승부의 세계에서, 어쩌면 사랑은 에너지이자 위안이다.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아픔을 모두 이해하고 보듬어 줄 단 한 사람의 존재. 스포츠동아는 ‘러브스토리 인 스포츠’를 통해 승부사들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를 소개한다. 첫번째 주자는 지난해 프로야구의 아이콘, KIA 김상현(30)이다.


○‘누나와 동생’에서 애틋한 ‘연인’으로

2002년 4월 5일. 유미현(32)씨는 처음으로 야구장을 찾았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친구 홍세완(KIA)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저게 뭔가’ 싶었는데, 갈수록 야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점점 야구장 나들이가 잦아졌다. 그러다 만났다. 나이는 두 살 어리고, 이름은 김상현이라고 했다. 홍세완이 저녁식사 자리에 데려온 후배. 원정 룸메이트란다. 큰 덩치에 무뚝뚝한 생김새. 그냥 그랬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정이 갔다. 야구를 좋아하게 됐을 때랑 비슷했다. “누나, 누나” 하며 잘 따르는 동생이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일단은 거기까지.

7월 31일. 동생이 “서울에 왔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서울팀 LG로 트레이드됐다고 했다. 인천에 살고 있던 유 씨와 타향살이를 시작한 동생은 이전보다 더 자주 만났다. 그래도 사랑의 시작에는 ‘계기’가 필요하다. 2003년. 동생은 데뷔 후 가장 큰 기회를 잡는 듯했다. 친정팀을 상대로 이적 첫 홈런을 날렸고, 부러진 방망이로 문학구장 외야를 넘겼다. 그런데 7월 13일, 수비 도중 왼팔이 부러졌다. 야구 인생의 갈림길. 동생은 병원에 실려 가면서 꺽꺽 눈물을 삼켰다. 바로 이 때, 소식을 들은 누나가 찾아왔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려던 약속도 취소하고, 동생의 병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괜찮을 거야. 힘내자, 상현아.” 마음으로 위로했고, 정성스레 간호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손길이었다. 그 후로 동생은 ‘남자’가 됐다. 남자친구가 있었던 유 씨도, 성큼성큼 다가오는 동생의 발걸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다음달, 두 사람은 연인이 됐다.


○시련을 딛고 맺은 사랑의 결실

두 사람이 결혼하기까지는 이후 5년이 더 걸렸다. 매 순간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게 사랑이라지만, 둘의 연애는 유독 고단했다. 남자의 야구는 잘 풀리지 않았고, 지켜보는 여자의 마음도 함께 찢어졌다. 게다가 젊은 혈기로 뭉친 연하의 남자친구는 연봉에 비해 많은 용돈을 써버리곤 했다. 스스로도 “철없던 시절이라 아내 속을 많이 썩였다”고 털어놓았을 만큼.

설상가상으로 2006년 봄에는 유 씨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목에 혹이 생기고 원인 모를 통증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 찾은 병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1년을 버텨도 차도가 없었다. 다른 병원을 찾았다. ‘갑상선암’이라고 했다.

방사선 치료가 시작됐다. 수술로 갑상선 두 개를 다 떼어내야 했다. 평생 약에 의존해야 한다는 선고도 받았다. 여자는 양가 부모에게 차마 말도 못 꺼낸 채 몰래 병원에 다녔다.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자의 가슴도 무너져 내렸다.

시련은 둘의 사이를 더욱 단단하게 했다. 2007년 말, 둘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모아놓은 돈도, 장밋빛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지만,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은 서로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준비하던 김상현은 미니 홈피 첫 화면에 ‘새로운 시작’이라 적어놓고 D-데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내 덕분에 쓰러지지 않을 힘이 생겼다”고.


○또 한 번의 트레이드…‘설마’가 ‘현실’로

“이번 한 번만 더 나를 믿어줘.” 2009년 4월. 광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내는 가만히 남편의 손을 마주잡았다. 몇 달 후 이들에게 펼쳐질 환희의 순간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채였다. 그런데 남편은 다짐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불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남편도 아내도 ‘설마’ 했다.과거의 실패는 아내에게 자꾸 불안감을 안겼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던 남편은 정말 끝까지 뭔가를 보여줬다. 남편의 성적표에 찍힌 숫자는 하루가 다르게 불어갔다. 게다가 남편은 유 씨가 아플 때나 부부싸움이라도 한 날이면, 꼭 맹활약을 펼쳤다. 유 씨가 갑상선 절제술을 받던 날도, 남편은 대구에서 홈런 두 방을 몰아쳤다. 안 그래도 ‘칼로 물 베기’라는 부부싸움의 앙금은 홈런과 함께 날아가기 일쑤였다.


○‘행복이’와 함께 지켜나갈 평화

천상 남자인 남편은 여전히 무뚝뚝하다. 유 씨의 생일이 (전지훈련 기간인) 2월이라 오붓한 생일파티를 해본 적이 없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이벤트나 여행도 쉽게 떠올리기 힘들다. 하지만 부부는 지금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오랜 시련의 결실을 만끽하고 있는 데다, 유씨의 뱃속에서 5개월째 ‘행복이’가 자라고 있어서다.

연봉 5200만원짜리 선수였던 김상현은 올해 2억4000만원을 받는다. 그동안 조금씩 졌던 빚을 갚고,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5월이면 태어날 아이를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도 마련할 수 있다. 이제는 둘이 아니라 셋. 여러 의미에서 이 부부에게는 ‘새 출발’인 셈이다. 두 손을 꼭 잡고 남루한 여정을 함께 걸어온 김상현 부부. 어둠을 이해하기에 빛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훗날 앞길에 예상치 못했던 고난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서로가 있기에 두렵지 않은 사랑이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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