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시절 한화 김민재 코치의 소개로 만난 이진영과 박선하 씨는 인천과 부산을 오가며 사랑을 키웠다. ‘국민우익수’로 인기가 치솟으며 박 씨가 불안해하던 순간 이진영은 “내게 여자는 당신 한 명 뿐이다”고 고백하며 결혼이라는 인생의 만루홈런을 날렸다. 사진제공 | 이진영
이진영-박선하 부부
#1. “진영아, 너 여자친구 없지? 이 형이 소개시켜 주마.” 정확히 2005년 8월 4일이었다. 전북 군산 출신의 야구선수 이진영(30)과 부산에 살던 발레리나 박선하(31) 씨가 처음 만난 날. 둘 사이에 사랑의 오작교를 놓아준 건, 당시 이진영과 SK에서 한솥밥을 먹던 김민재 한화 코치였다.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후배가 안쓰러웠던 걸까. 김 코치는 “친구가 잘 아는 여동생이 있다”며 중매쟁이를 자청했다. #2. “잘 지냈어요?” 첫 만남 후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누나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진영이 ‘이대로 끝인가 보다’ 하며 체념하고 있던 참이었다. 서로 호감은 느꼈지만 여자 쪽이 한 살 많은 게 서로 불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민하던 누나가 먼저 결단을 내려준 것이다. 반가운 마음이 와락 밀려왔다. 당연히 곧바로 답장. 자칫 끊어질 뻔했던 인연의 연결고리였다.
#3. “오랜 만이야.” 박 씨는 다시 만난 동생에게 악수부터 청했다. 그러자 이진영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차마 덥석 응할 수가 없어 손끝만 살짝 잡았다 놓을 뿐. 박 씨는 훗날 “그렇게 덩치 큰 선수가 여자 앞에서 수줍어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고 귀띔했다. 이진영은 반대로 “누나답게 앞장서 이끌어주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짧은 악수는, 평생을 함께 할 사랑의 시작이었다.
○부산-인천 오가는 장거리 연애 ‘사랑은 전화를 타고’
처음으로 마음을 확인한 장소는 대구와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 위였다. 박 씨는 그 날 KTX를 타고 SK의 대구 원정경기를 보러 왔다. 야간 경기가 끝나고 늦은 식사까지 마치니 어느새 밤 12시. 그런데 박 씨는 부산 집에 가겠다며 대차게 택시를 잡아탔다. 이진영은 그 모습이 “왠지 멋있어 보였다”고 했다.
‘잘 내려가고 있나’ 싶어 시작된 전화통화는 박 씨가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이후 휴대전화는 이들에게 사랑의 ‘메신저’가 됐다. “저는 인천에, 여자친구는 부산에 있었으니 다른 연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통화를 했죠. 하루 한 시간은 기본이고, 쉬기 전 날은 두세 시간도 훌쩍 넘겼으니까요.”
게다가 연상의 여자친구는 이진영에게 ‘복덩이’였다. 박 씨를 만나면서 야구 인생이 술술 풀렸기 때문이다. 그 중 으뜸은 당연히 2006년의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뽑혀 4강 신화를 일궜고, 병역을 면제 받았다. 또 환상적인 다이빙 캐치와 홈 송구로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물론 WBC 이후 높아진 인기 때문에 박 씨가 불안해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진영은 “나는 운동 밖에 모른다. 앞으로도 내게 여자는 단 한 명 뿐”이라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했다.
누나에게 모든 걸 맡겼던 동생은 이제 한 가족을 믿음직스럽게 이끄는 ‘가장’이 됐다. 된장찌개 밖에 끓일 줄 모르던 누나도 이제 남편의 입맛에 맞는 보양식을 척척 내놓을 줄 아는 ‘안주인’으로 변모했다. 2008년 12월, 연애 3년 만에 화촉을 밝힌 후 찾아온 변화다.
○양가 부모에게 받은 사랑 “효도로 갚을게요”
이진영과 박 씨는 결혼하면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부부가 되자”고 약속했다.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것을 감사하며 살자는 뜻이다. 애교 많은 사위와 믿음직한 며느리는 아무리 바빠도 군산과 부산의 양가 부모에게 전화하는 걸 잊지 않는다. 특히 이진영은 처가의 배려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아내에게 늘 당부하셨다고 해요.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배려해주고 잘 맞춰주라고요. 소중한 딸을 맡겨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신경까지 써주시니 무척 행복했죠.” 친가 부모도 마찬가지다. 이진영의 결혼 전날 눈물을 흘릴 만큼 깊었던 어머니의 사랑은 이제 며느리에게도 옮겨갔다. 아내가 어머니의 손맛과 살림 솜씨를 하나씩 물려받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처음엔 상처를 받은 기억도 있었다. 박 씨의 집에 남자친구 자격으로 첫 방문하던 날, 이진영은 자신이 연하라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백화점에서 어른스러운 양복 한 벌을 골라 입고 처가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나중에 박 씨가 고모에게 살짝 전화를 걸어보니, 장모가 “얼라 같다(애 같다)”는 평가를 내렸다는 게 아닌가. 이진영으로서는 충격적인 한 마디. 알고 보니 “귀엽다”는 의미로 했던 말인데 말이다.
박 씨도 그랬다. 첫 식사 자리에서 이진영의 부모님은 별다른 질문도 던지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나름대로 ‘예상 질문’에 대비했던 박 씨로서는 ‘내가 마음에 안 드시나 보다’ 싶어 서운할 수도 있는 일. 하지만 집으로 달려가 항의한 이진영에게 부모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여자친구 부담 되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면서?”
이젠 모두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다. 이진영은 지금 “우리 아이가 태어나면 분명 양쪽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을 것”이라는 기대로 가슴이 부풀어 있다.
○4개월 후 찾아올 2세를 기다리며
“자기야! 임신 맞아, 임신!” 이진영은 거실로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결과를 확인한 박 씨도 환호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꼭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첫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결혼 직후부터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적잖이 마음고생을 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임신 징후가 보여 찾아간 병원에서는 “아직 확실치 않으니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참으로 더딘 시간. 사흘 만에 ‘못 기다리겠다’는 심정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5분 동안 거실에서 손을 모아 기도했다. 이진영은 “임신을 확인하니 아내에게 고맙고 마음이 너무 벅차서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이제 박 씨는 임신 5개월째에 접어든다. 매년 떠났던 전지훈련이지만, 올해는 유독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이유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사이판에서 매일 전화를 걸어 아내를 웃게 해주는 것뿐. 이진영은 “우리 2세가 뱃속에 있는데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뿐이다. 그동안 운동을 잘할 수 있게 도와준 아내를 위해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하루 빨리 아내와 아기를 보고 싶다”고.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