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경기] “생애 최고의 경기 아직 없다”…역시! ‘야신’

입력 2010-02-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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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김성근 감독. [스포츠동아 DB]

김성근, 지금도 기억나는 3경기
그럴 줄 알았다. 내 생애 최고의 경기를 골라 달랬더니 돌아온 답변은 “아직 없다.” 2000경기를 넘게 치렀음에도. 질문을 수정할 수밖에. “그럼 이제껏 치러온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경기를 뽑아주세요.” 그는 3경기를 언급했다.

충암고 감독 시절 황금사자기에서 신일고를 상대로 9회 2사까지 노히트노런으로 앞서다 뒤집힌 경기. 지난해 한국시리즈 7차전. 그리고 “새로운 경지에서 야구를 보게 됐고”, 사람들이 그를 ‘야구의 신’으로 추앙하기 시작한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그러고 보면 감독 김성근의 저력은 승리나 우승이 아니라 지고도 지금껏 살아남은 데에 있지 않을까. 인터뷰는 김 감독이 일본 고지에 있는 관계로 이틀에 걸쳐 전화로 진행됐다. 그는 훈련 중에 전화를 받았다. “박정권, 와서 쳐.” “최정, 자리 옮겨.” 틈틈이 지시를 내리면서도 2002년을 더듬었다. 늘 실감하지만 그의 복원력은 정말 ‘야구의 신’이다. 볼 카운트와 볼 배합까지 어찌 그리 정확할 수 있는지. 기록지를 보고 질문하는 기자가 찾아다녀야 했다.


-왜 그 3경기가 기억나세요?

“감독 하면서 야구장에서 선수들이 눈물 흘리는 걸 본 게 그 3번뿐이었으니까. 1977년 황금사자기였는데 LG 박종훈 감독도 기억할거야. 9회 2사까지 2-0으로 이기다 2-3으로 뒤집혔어. 그리고 작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울컥했는데 하늘 보고 참았어. 2002년 졌을 땐 나도 울었지. 아마 그때 LG 사장만 빼곤 다 울었을 거야.(당시 LG 프런트 고위층이 자기 팀의 우승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설로 통한다. 그래야 김 감독을 경질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까 전부 내가 진 경기네. 내가 잘못해서.”


-당시 한국시리즈 들어갈 때 마음이 어땠어요? 사방이 비관적이었잖아요.

“승패를 초연한다는 의미에서 마음이 편했어. 4월부터 교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4강까지 갔고, 준플레이오프 현대에 이겼고, KIA한테 뒤집어서 이겨서 대구로 넘어갈 때까지도 유임이라는 게 없었고. 그때만큼 마음이 편했던 시즌이 없어.”


-레임덕과 직면했을 텐데 힘드셨겠네요.

“직원들은 일부러 내 옆에 못 오게 했어. 곤란하니까. 고립을 자원했지. (나 빼고) 구단 하고 선수 하고 상의할 건 하라고 했지. 나는 신문 보고 알았어. 단, 김재현은 ‘이제 야구 끝난다’고 했는데 어떻게든 얘를 마지막에 보내는 길을 만들고 싶었어. 이병규가 앞장서서 해줬고. 신윤호 최동수 류택현…. 감독 대 선수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믿은 거지. 이상훈은 말할 것도 없고. 남자 대 남자로.”


-돌이켜봐도 6차전 패배에서 후회는 없나요?

“8회 2점 나고 9-5로 앞섰을 때. 김우석에게 번트사인을 냈는데 3루코치가 놓쳤어. 결과는 삼진이었고. 거기서 4점 리드했는데도 졌다 싶었어. 그 예감대로 돼버렸고. 8회말 이승호가 볼넷을 냈어. 그건 지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삼진이었어. 이승호가 삼진을 잡으면 다음타자가 삼성 진갑용인데 이상훈한테 굉장히 약해요. 이상훈-진갑용을 9회 첫 대결로 시키려고 했는데. 그 포볼이 아쉬워.”


-지고 나서 무슨 말을 하셨어요?

“선수들 앞에서 사과했어. 내가 잘못해 졌다고. 졌지만 감독으로서 눈을 뜬 경기였어.”


-김응룡 사장(당시 삼성 감독)이 당시 우승 직후 감독님을 ‘야구의 신’이라 불러서 여전히 회자됩니다.

“그럼 신을 이긴 자기는 뭐가 되는 거야?(웃음)”


-어느 인터뷰에서 김 사장이 ‘나는 감독으로 10번, 사장으로 2번 우승했는데 김 감독은 아직 우승이 2번뿐이지 않느냐’고 했다는 얘기 들으셨어요?

“갖고 있는 선수를 보자. SK부터 내가 맡은 팀 중 막강한 팀이 어디 있었어? 있는 멤버와 만들어 가는 팀 중 나는 만들어 가는 쪽이고. (김 사장이) 꼴찌에서 시작한 적 있었어? (우승횟수로 감독의 순위를 매길 수 있는가는) 가치관의 문제야. 졌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어. 그리고 김성근이 하는 야구는 다 재미있어.(웃음) 2008년이나 작년 시리즈도 그렇고.”


-그 경기가 감독 인생에서 깨달음을 얻은 계기였겠죠?

“태평양에서는 우리 팀을 보기 시작했고, 전법에 기본을 깨우쳤어. 쌍방울 가서는 적을 보는 눈이 생겼고, 적재적소를 배웠지. LG에 가서는 조화, 팀 조직을 알았어. 또 한 길만 보면 주위가 어두워진다. 이길라 이길라 하면 옆이 안 보이더라고. SK로 와서는 처음으로 우승이라는 얘기를 꺼냈어. 유언실행. 무언실행이 자기와의 약속이라면, 유언실행은 세상과의 약속이지. 이건 타협이 있을 수 없어.”


-다시 김 사장 얘기로 돌아와서요. 김 사장이 김 감독과 싸움 좀 그만 붙이라고 합니다.

“맞아. 나이 들어서 싸울 일이 뭐 있냐?(웃음) 김 사장은 장미고, 나는 음지고. 둘이 조화를 이룰 때 한국야구도 발전하는 것이라 생각해.”


-준우승하고도 경질을 피하지 못했지요. SK 감독으로 컴백하기까지 4년의 야인생활을 어떻게 견디셨어요? 억울함은 없었나요?

“인생에 있어서 전력투구를 다하면 결과 갖고 우왕좌왕하는 거 아니다. 그런 건 힘없는 사람이나 하는 거야.”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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