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라이프<끝>]“천하의 히딩크도 내앞에서는 울고갔어”

입력 2010-02-19 17: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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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축구협회 조중연 회장은 매일 협회로 출근하는 최초의 회장이라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조 회장이 금형조각 장인 지재봉 씨로부터 선물 받은 남아공월드컵 진출 기념 조각물을 손에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조중연 축구협회장의 2002년 성공스토리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축구대표팀의 A매치는 팬들의 관심이 가장 높은 종목이다. 그만큼 욕도 많이 먹는다. 조금만 부진해도 육두문자가 그냥 나온다. 동아시아선수권 때 중국에 패하자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가 다운된 것은 좋은 사례다.

반면 한일전 승리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자 격려의 글이 쏟아졌다.

축구협회는 일년 내내 관심과 비판(또는 비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축구협회 수장 조중연(64) 회장의 인기도 대표팀의 성적에 따라 춤을 춘다. 하지만 칭찬 보다는 욕을 더 많이 먹는 것이 사실이다. 회장 자리의 숙명이다.

조 회장은 2002월드컵의 실무 책임자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고, 파주NFC 건립 등 탁월한 행정 능력으로 축구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수장에 올랐다. 매일 협회로 출근하는 최초의 회장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조 회장은 지난 1년간 매일 아침 1시간씩 영어회화를 공부할 만큼 성실성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보다 월드컵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그에게 월드컵과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얽혀있는 지 들어봤다.


●차범근 감독 경질은 가슴 아픈 일


조 회장이 처음 월드컵과 인연을 맺은 것은 94미국월드컵이다.

KBS 해설위원으로 현장에서 중계했던 그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축구를 한 사람으로서 월드컵에 나가서 성적을 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조 회장이 팬들에게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시기는 98프랑스월드컵이다. 알려진 대로 당시 차범근 대표팀 감독을 직접 경질한 인물이 그였다.

조 회장은 “당시 협회 전무와 기술위원장, 대표팀 단장까지 겸임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을 어깨에 걸머쥔 상태였다”며 자신이 앞장 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했다. 나름 최선을 다하고도 경질된 차 감독에 대해서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차 감독과는 대학교(고려대) 좋은 선후배 사이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그 때는 다른 생각이 없었다. 한국축구냐 차 감독이냐, 이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는 문제였다”고 했다.

사적인 감정 보다는 한국축구 위기 돌파의 문제였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결코 혼자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당시 상임 이사들이 모두 현장에 있었다. 만장일치로 차 감독의 경질에 찬성했다. 기술위원회에서도 단 한명만 빼고 모두 찬성했다. 결코 독단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차 감독 경질을 반대한 인물은 최순호 위원(현 강원 FC감독)이었다고 한다. 조 회장에 따르면, “차 감독은 우리의 꽃이다”며 당시 최 위원은 경질을 반대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나온 질문은 ‘화해’였다. 조 회장은 웃으면서 “올해 차범근축구대상 시상식을 축구회관에서 했다. 재작년 수원이 우승했을 때도 차 감독이 와서 인사했다”며 자신과 차 감독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선진축구 시스템의 견학

98프랑스월드컵은 한국 축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팬들은 좌절했다. 조 회장도 아픔을 겪었다. 입에 담기조차 힘든 비난과 욕설을 들었다. 이런 와중에 그에게 기회를 준 인물이 당시 협회를 이끌던 정몽준 회장이다.

1998년 8월, 정 회장의 지시로 유럽조사단이 꾸려졌다. 프랑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등 축구 선진국을 돌아보고 한국축구에 접목할 수 있는 것들을 파악하는 단체였다. 기간은 20여일.

조 회장은 그 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트레이닝 센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여자축구와 유소년축구에 대한 관심도 커졌고, 연령별 상비군제도 그 때 파악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 회장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귀국한 그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서울시 관계자를 찾아다녔다. 상암에 숙소와 연습구장, 트레이닝센터를 지어야한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서울 근교의 고양 시도 알아봤지만, 조건이 맞지 않았다. 바로 다음 장소가 파주였다. 현장으로 달려가 장소를 확인했고, 토지개발공사에 가서 가능성 여부도 알아봤다.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 지금의 파주 NFC가 탄생했다. 98월드컵에서 처절한 실패는 곧 2002월드컵 성공을 위한 발판이었다.


●정몽준 회장을 2번이나 떠나려 했던 사연

조 회장은 인터뷰 내내 “정(몽준) 회장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축구에 관한 한 모든 것을 들어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딱 2번 협회를 떠날 생각을 했다고 한다.

첫 번째는 2002월드컵 4강에 따른 포상금 문제였다. “당연히 차등 지급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선수들은 프로다. 메리트시스템이 필요했다. 7경기 90분을 모두 뛰면 630분 정도인데, 단 1분도 뛰지 않은 선수와 똑 같이 포상금을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금 생각해도 차등지급이 맞다. 히딩크도 16강, 8강, 4강, 결승, 우승 등의 옵션 조항이 있을 만큼 차등적으로 보너스를 받았다.”

당시 정 회장은 그를 설득했다. 논리는 맞지만 4강 달성으로 국민적인 축제를 생각하면 균등 지급으로 하자고 했다. 조 회장은 4강 축하파티에 가지 않았다. 이후 1주일간 협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이런 식이면 협회 일을 못 본다”는 단호한 입장이었지만 결국 정 회장 곁을 떠나지는 않았다.

지금도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까. 조 회장은 “남아공월드컵에서 만약 4강에 진출한다면 차등 지급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소신을 펼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두 번째는 2005년 축구협회의 국정 감사 때였다. “정치인들이 따지고 드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축구 인들이 국세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협회의) 세무조사를 요청하는 모습은 지금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축구협회를 부패집단으로 모는 축구 인이나 정치에 편승한 축구 인들을 용서할 수 없다.”

또 다시 협회를 떠나겠다고 정 회장에게 통보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나보고 그러는 것인데…’ 라며 실무 부회장은 그만두더라도 협회에 남아달라고 간곡하게 만류했다. 결국 비상근 부회장으로 남았다.


●히딩크가 조 회장에게 큰 절을 올린 까닭은

2002월드컵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히딩크 감독이다. 하지만 히딩크도 조 회장 앞에서는 울고 갔다. 조 회장은 골프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히딩크는 내기의 천재였다. 어느 종목 가릴 것 없이 그를 이기는 한국인이 없었다. 당시 통역을 맡은 직원이 제발 혼 좀 내 달라고 할 정도로 얄미웠던 모양이다.”

어느 날 히딩크가 골프를 하자고 제안해왔다. 연습을 못했지만, 내심 ‘이 때다 싶었다’고 한다. 남은 시간은 10일 정도. 그 때부터 매일 아침 훈련을 했다. 결전의 장소는 서울 근교 골프장. 히딩크는 전반 43타를 쳤고, 조 회장은 35타를 쳤다. 조 회장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돌았다.

히딩크는 당연히 후반 역전을 노렸다. 하지만 후반에도 히딩크는 40타를 쳤다. 그렇다면 조 회장의 스코어는? 35타였다. 결국 조 회장은 히딩크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 클럽하우스에서 히딩크는 조 회장에게 스코어카드를 달라고 했다. 영문을 몰랐지만, 패한 스코어 카드를 가져가는 것이 조금은 의아스러웠다고 했다.

1주일 뒤, 히딩크가 협회를 방문했다. 조 회장에게 정중히 90도로 고개를 숙인 뒤 스코어카드가 든 액자를 내밀었다. 스코어가 선명하게 보였다. 히딩크가 한국에서 90도로 인사를 한 것은 단 두 번이다. 한 번은 4강에 올랐을 때 관중들 앞에서 볼을 차주면서 한 것과 또 한번은 조 회장에게 골프를 지고 난 뒤의 경의를 표하면서다.

당시 히딩크는 “축구협회가 아니라 골프협회 전무를 했어야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남아공월드컵 성공도 자신

조 회장은 한국축구를 위해 몸을 던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장이 되기 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2008년 11월경 협회 내에서 회장 후보로 거의 굳어졌다. 주위에서는 단장 자격으로 한국의 사우디 원정에 가지 말라고 말렸다(당시 사우디 원정은 월드컵 최종예선 3차전으로 본선 티켓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일전이었다). 혹시 지기라고 하면 회장 선거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며 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월드컵에 나가지 못하는 협회 회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회장 하겠다는 놈이 중요한 경기를 피해가면 되느냐.” 결국 한국은 사우디에 2-0으로 승리하며 본선 진출의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앞으로도 이런 정신으로 회장직을 수행하겠다고 했다. 전무와 부회장 등의 경험을 모두 동원해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좋은 팀과 평가전을 갖는 등 베스트 준비를 해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다.”

2022년 월드컵 유치도 낙관했다. “2018년 개최지는 유럽이 확실하다. 2022년은 미국 호주 일본 한국이 다툴 것이다. 사람(집행위원) 많이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접할 기회가 많다. 신뢰를 많이 쌓는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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