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축구는 세계무대에서 통하지 않을까’라는 주제를 놓고 영국 ‘가디언’의 기자가 이비차 오심, 필립 트루시에 전 일본대표팀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분석한 기사는 흥미로웠다. 필자의 오감에 와 닿았다는 얘기는 평소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다.
등록선수가 대략 한국의 10배에 이르고 이미 선진축구 시스템을 갖춘 일본이 여전히 ‘탈 아시아’에 실패하고 있는 이유를 해당 기사는 ‘체격적인 한계’와 ‘수동적인 국민성’이라는 두 가지 요인으로 압축하고 있다.
한국선수들과 비교해도 분명 일본선수들은 체격과 골격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한국인들은 이른바 ‘통뼈’가 많지만 일본인들은 가늘고 약하다는 게 통념이다. 체격 역시 한국은 이미 유럽수준에 올라와 있다. 체격과 파워의 중요성이 점차 늘고 있는 세계축구 무대에서 일본선수들이 고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J리그 오미야 아르디쟈 감독을 지냈던 핌 베어벡 전 한국대표팀 감독(54) 역시 필자에게 비슷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모험을 싫어하고 수동적인 기질 역시 ‘창의성 부족’이라는 핸디캡과 직결된다. 축구라는 스포츠는 순간적인 판단과 임기응변능력, 즉 ‘몸에 밴 창의성’이 선수의 질을 좌우한다. 이런 측면에선 한국 선수들도 일본 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반드시 국민성의 문제라기보다는 강압적인 훈련방식 및 수동적인 교육환경의 영향이 크다.
다만 태생적으로 볼 때 대륙적인 기질의 한국 선수들이 섬세한 일본 선수보다는 축구라는 종목에 더 잘 맞는다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수동적인 기질과 순응적인 기질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수동적 성격은 그 자체로 부정적이지만 순응적인 기질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그것이 창의성을 훼손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면 오히려 기량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다. 유럽의 클럽들이 한국이나 일본선수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훈련이 잘 되어있고, 조직에 순응하며, 특히 감독의 지시에 말없이 따르는 모습 등은 유럽선수들이 갖지 못한 강점이다. 이른바 외유내강형의 이 같은 기질은 위기에서도 투혼을 불사를 수 있는 힘이 된다.
한국축구의 경우, 세계수준으로 도약하는데 일본과 같은 ‘태생적인 한계’는 없다고 단언한다.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재목들이 나오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오히려 한국축구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축구선수로서 절정의 시기에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병역의무와 이중국적 불허 등 ‘제도’에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도는 시대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으나 태생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