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단독] 한번 오른 4강 두번 못 오르랴

입력 2010-03-23 15: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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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용-기성용.

청용-성용 당찬 월드컵 포부
“6월엔 쌍용시대 연다” 부푼꿈

짧은 만남이었지만 시종 유쾌했다. K리그 FC서울에서부터 우애를 다져온 ‘절친’은 쉴 새 없이 서로에게 농담을 건넸고, 사진 촬영을 할 때는 어깨를 감싸 안으며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다.

‘한국 축구의 희망’ 이청용(22·볼턴)과 기성용(21·셀틱)의 표정은 밝았지만 각오만큼은 다부졌다.

2010남아공월드컵에서의 선전을 다짐했고, 16강 이상의 성과를 자신했다. 2002한일월드컵 재현까지 직접 언급했으니 말 다했다.

“평생의 꿈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2002년 정도의 성과를 올리고 싶다.”(이청용) “원정 월드컵에서 16강 이상 성적을 내면 더 바랄 게 없다.”(기성용) “첫 게임 그리스전만 잘 치러내면 우리가 원했던 성적을 틀림없이 이룰 수 있을 것”이란 두 사람의 대답은 우리가 꼭 원했던 코멘트다.
스포츠동아는 창간 2주년을 맞이해 3월 초 영국 런던에서 ‘쌍용’과의 단독 인터뷰를 했다.


●PartⅠ- 내 인생 첫 월드컵

더 이상 관전자 입장이 아니다. 꿈도 아니다. 그라운드에 나서야 할 태극 전사의 일원이다. 최종 엔트리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발탁 가능성은 99% 이상으로 봐도 될 정도로 이미 허정무호의 튼실한 기둥이다.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란 위업을 달성한 한국 축구의 당면 과제는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전력을 갖춘 만큼 희망도 점점 커지고 있다.

작년 7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던 이청용은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내가 갖춘 모든 기량을 펼쳐보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올 초 스코틀랜드 명문 클럽 셀틱에 입단한 기성용도 마찬가지.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하지만 최선이 정답인 것 같다.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추고 있는 만큼 기대 이상의 성적을 자신한다.”

부담은 전혀 없다. 한국은 2002년 전만 해도 지나친 긴장으로 월드컵 무대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헌데 ‘쌍용’은 달랐다. 새로운 도전이 오히려 즐겁다고 했다. 전 국민적인 바람과 기대도 싫지 않은 눈치다.

“부담을 느끼기보단 내가 가진 모든 걸 최대한 보여주고 싶다.”(이청용)

“우리가 감당할 몫이다. 부담이 오히려 기회다. 조금 떨릴 수는 있지만 어차피 다른 팀도 그럴 것이다. 즐기면서 하면 되지 않겠나?”(기성용)

월드컵은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스타들이 모이는 꿈의 무대다. 이들은 상대를 크게 의식하지도 않았다. 겁먹지도 않았고 특별한 라이벌 의식도 없었다. 딱히 특정 인물을 라이벌로 지목하지도 않았다.

이청용은 “오른쪽 날개로 뛰기 때문에 우리와 만날 모든 팀들의 미드필드 왼쪽 측면 요원들이 라이벌”이라고 했다. 기성용이 라이벌을 놓고 고민하고 있자 한 마디를 툭 던진다. “사마라스(그리스)로 하면 어때?”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기성용. “같은 조의 모든 이들을 경계해야하지 않을까? 사마라스도 강하긴 하지만….”

이들이 전망하는 대한민국의 월드컵 성적은 어떨까.

돌아온 답이 당찼지만 뉘앙스는 사뭇 달랐다. 이청용은 “8년 전 홈에서 4강에 나갔으니, 이번에는 원정에서 그 정도 성과를 내야하지 않겠나. 이쯤이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반면 기성용은 좀 더 신중한 태도다. “일단 그리스와 첫 단추만 잘 꿰면 된다. 아르헨티나는 누가 봐도 강팀이지만 나이지리아와 그리스는 우리보다 강하지 않다. 우리가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본다. ‘공은 둥글다’는 말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이 될 것이다.”

이청용-기성용.



●PartⅡ- 내 인생 첫 유럽 무대

‘쌍용’에게 유럽 무대는 월드컵 못지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젊은 그들이 국내 축구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는 ‘국내 무대는 너무 좁다’는 말이 돌았다. 2009년 여름과 2010년 초. 약 6개월의 시차를 두고 둘은 나란히 유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저마다 달랐지만 “꼭 성공하고 돌아오겠다”는 포부만큼은 같았다.

한국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유럽 진출. 가장 먼저 ‘축구 종가’에 안착한 대표팀 선배 박지성(맨유)과 이영표(알 힐랄)가 주는 의미도 남달랐다. ‘쌍용’에게 박지성과 이영표는 선구자였고, 롤 모델이었다.

“선배들이 있기에 우리가 보다 쉽게 좋은 무대로 떠날 수 있었다. 일단 유럽 진입이 어려울 뿐, 막상 나가보면 한국 선수도 언제든 적응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다면 (박)지성이 형이나 (이)영표 형이 한 것처럼 우리도 후배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성공하는 게 후배들을 돕는 길이다.”

월드컵 16강이 이들의 공통의 목표였다면 개인적인 희망도 있다.

이청용은 볼턴의 프리미어리그 잔류가 첫 번째 목표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경기를 뛰고, 소속 팀을 리그 중위권 이상으로 안착시킨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기성용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리그 우승을 셀틱에서 꼭 경험해보고 싶다”고 주먹을 쥐어보였다.

상황은 다르지만 느낌은 좋다. 꾸준히 득점과 도움을 기록한 이청용은 이미 한 시즌 한국 선수 최다 공격 포인트 기록을 깨고 새로운 기록을 만들고 있다. 스트라이커가 아니란 점에서 그의 활약은 더욱 돋보인다.

기성용은 출전 기회가 많지 않지만 겨울 이적시장을 선택한 탓에 어쩔 수 없다. “서울에서처럼 많은 경기에 나설 수는 없어도 마음은 편하다. 조금씩 감각을 되찾고 있다. 조절도 잘 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들에게서 K리그와 유럽 리그의 차이를 몸으로 느낀 소감이 궁금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는 피지컬 및 체격적인 면에서 우리보다 앞설 뿐, K리그 수준 자체는 결코 낮지 않다. 다만 리그 자체의 역사와 스케일이 다르고, 응원 문화와 열기는 큰 차이가 있다.”


●PartⅢ- 내 인생의 정착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진 ‘쌍용’도 혈기왕성한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들이다. 늘 축구만 하고 살 수는 없다. 각자 취미와 개인사가 있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겠다는 나름의 소박한 꿈도 있다.

신부감으로 삼고픈 이상형도 있다. 많은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미지와 같은 연예인 한 명을 꼽아달라고 했다. 만일 비슷한 이미지가 없다면 ‘ 여기에 딱 맞는 이를 길거리에서 만난 적이 있냐’고 물었다.

“연예인 이상형은 없다”고 잘라 말한 이청용. 길거리에선 이상형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혹시 현재 여자친구?

한없이 꾸물거리다 싱긋 웃는 표정에서 대답이 딱 나온다.

‘내조의 여왕’을 이상형이라고 한 기성용도 길거리에서 정말 Feel이 꽂히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단다. 말 한 마디 걸어보지 못한 채 그냥 보내야 했던 게 두고두고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시작한 김에 진도를 더 나갔다. 달콤한 신혼여행, 첫날밤이 지난 뒤 아침에 일어나 미래의 신부로부터 가장 먼저 듣고 싶은 말은 뭘까?

“아, 그런 거 잘 모르겠다. 나중에 아내가 생겨봐야 알겠지만… 생각만 해도 닭살이 돋는다.”(이청용)

기성용은 보다 과감했다. “사랑해? 자기랑 결혼 너무 잘했다? 이 말은 꼭 듣고 싶다. 힘이 날 것 같은데.”

젊음과 혈기 때문일까? 아니면 외로움 탓일까?

먹고 싶은 것도 많다. 물론 외국에선 보기도 구하기도 먹기도 힘든 음식들이다. 매콤한 곱창이나 떡볶이 따위가 늘 당긴다. 떡볶이는 그나마 간혹 집에서 해먹을 수 있지만 한국처럼 맛있지는 않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축구계 ‘한류 스타’들은 저마다 찍고 싶은 CF도 다양하다.

이청용은 “일단 휴대폰 광고를 찍고, 이후에는 전형적으로 성공한 한국 남성답게 금융과 차량, 정장 광고 모델로 나서고 싶다”고 했다.

기성용은 먼저 의류를 찍은 뒤 전자제품과 주택 광고를 찍고 싶다고 했다.

더불어 물었다.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난다면? 답이 의외로 소박했다.

제주도(이청용), 강원도 계곡(기성용)이 꼭 가고픈 여행지였다. 딱히 이유는 없다. “국내 여행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는데….”

인터뷰 말미.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아주 먼 훗날이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 이루고픈 꿈과 목표는 무엇?”

이청용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싶어 한다. 20대 초반인 터라 은퇴 이후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유소년 장학회를 만들고 싶단다.

기성용은 “감독이나 코치 등 지도자와는 다른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너무 받고 싶지 않다나? 대신 행정가의 길을 조심스레 말했다.

“꿈이 있으니 세계적인 무대에 서고 싶다. 물론 상황이 어찌될지 모르고, 앞일을 예측하기 어렵긴 해도 주어진 환경에 순간순간 즐기고 올인하면 그게 성공의 길이 아닐까?”

런던(영국)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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