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이 한 페이지의 글보다 훨씬 진한 감동을 줄 때가 있다.
한국 축구에서 잊을 수 없는 명장면 중 하나가 한국인 프리미어리그 맞대결 역사에서 연출됐다. 2006년 4월 18일 화이트 하트레인에서 벌어진 토트넘 핫스퍼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그 35라운드.
국내 축구 팬들의 관심은 온통 박지성과 이영표에게 쏠려 있었다.
둘은 2005년 10월 22일 맨유-토트넘 경기에서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첫 맞대결을 벌여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박지성과 이영표 모두 풀타임을 뛰었지만 박지성이 왼쪽 미드필더로 나서고 이영표가 왼쪽 풀백에 위치했기에 이렇다할 격돌은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대결은 달랐다. 박지성이 오른쪽 미드필더로, 이영표가 왼쪽 윙백으로 나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90분 내내 격한 충돌이 벌어졌다.
그리고 전반 36분, 박지성이 이영표의 공을 뺏어 웨인 루니의 골을 도우면서 둘의 희비는 엇갈렸다. 박지성은 동료들에 둘러싸여 환호를 받았지만 이영표는 고개를 떨궈야 했다.
그러나 정작 큰 반향을 일으킨 건 박지성이 올린 ‘도움’과 이영표의 ‘실수’가 아니라 한 장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박지성은 이영표의 손을 몰래 잡아주고 있었다. 이 사진이 공개되면서 국내 뿐 아니라 영국 현지에서도 큰 화제를 낳았다.
이후 1년에 2~3차례씩 벌어졌던 한국인 맞대결은 2007년 12월 26일 이영표(토트넘)-설기현(풀럼)을 마지막으로 맥이 끊겼다가 2009년 12월 31일 맨유-위건전을 통해 2년 여 만에 성사됐다. 결과는 맨유의 5-0 승.
조원희는 EPL 진출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풀타임을 소화한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K리그 수원 삼성으로 복귀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