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떠나 있던 1년의 시간이 많이 아쉬웠던 것일까. 돌아온 박진희는 불과 5개월 동안 세 편의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며 쌓였던 연기에의 갈증을 마음껏 풀고 있다.
박진희도 예외는 아니다. 2008년 대학원 석사 논문을 쓰며 꼬박 1년 동안 연기와 담을 쌓았던 그녀는 “쌓이는 감성을 연기로 풀거나 소모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하니 답답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말부터 박진희의 행보가 거침이 없다. 1월 MBC 드라마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이하 아결여) 주인공을 맡고, 끝나자마자 주연을 맡은 영화 ‘친정엄마’를 내놓았다. 영화 개봉에 이어 다시 새 드라마 ‘자이언트’ 주인공으로 나서는 그녀를 만나보았다.
■ 팔색조 배우 박진희
불과 5개월 동안 박진희는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다른 장르, 다른 캐릭터로 3편의 작품에 잇따라 출연한다. 특별출연으로 참여한 전쟁영화 ‘포화 속으로’까지 합하면 시대극과 트렌디드라마, 휴먼스토리를 오가는 분주한 활동인 셈이다.
또래 배우들이 지나치다싶을 만큼 작품 출연에 신중을 기하고 몸을 사리는 것과 비교해 그녀의 왕성한 연기 활동은 더욱 돋보인다. 박진희는 “도전하고 싶은 작품이 많아졌을 뿐”이라고 했지만 이어 한동안 말문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가 “그건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이 더 다양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우리 엄마도 딸 밖에 몰라요”
‘친정엄마’(감독 유성엽·제작 아일랜드픽처스)의 22일 개봉을 앞두고 박진희를 만났다. 인터뷰 전날, 그녀는 지인들이 참석해 열린 VIP시사회에서 처음으로 ‘친정엄마’의 완성본을 봤다. “다시 슬픈 감정으로 빠져 들까봐 시사회 내내 ‘이건 영화야 영화’라고 저 스스로 최면을 걸었어요.”
‘친정엄마’는 딸만 바라보며 사는 시골엄마와 그 보살핌 속에 자랐는데도 “엄마 때문에 못 살아”를 입에 달고 사는 딸의 이야기다. 박진희는 어렵게 서울의 대학에 진학해 작가로 성공하지만 끝내 불치의 병을 얻는 딸 지숙을 연기했다. 그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퍼주는 엄마는 김해숙이 맡았다.
영화 속 지숙은 지금까지 박진희가 보여줬던 쾌활한 캐릭터와는 다른 인물이다. 시종일관 감정을 절제하는 스크린 속 그녀의 모습은 최근 막을 내린 ‘아결여’에서 보여줬던 당찬 박진희를 떠올리기 어렵다. ‘친정엄마’는 박진희에게 엄마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다.
“어릴 때부터 제게 엄마는 큰 존재였어요. 저희 엄마도 영화 속 엄마처럼 딸에게 올인 해요. 딸이 전부죠. 촬영 내내 ‘엄마에게 더 잘해야겠다’, ‘그런데 이 마음이 오래 가겠어?’라는 생각을 수없이 반복했죠. 저도 어쩔 수 없는 딸인가 봐요.”
○ 내달부터 시대극 ‘자이언트’로 안방나들이
지금은 ‘친정엄마’ 속에 푹 빠져있지만 이달 말부터는 드라마 ‘자이언트’ 촬영에 돌입한다. SBS가 5월부터 방송하는 ‘자이언트’는 박진희의 또 다른 도전이다. 재벌가의 딸이지만 시련을 겪으며 홀로 서는 주인공 정연으로 분한 그녀는 “차갑고 욕망이 있는 여자”라고 역할을 소개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따르는 설렘은 요즘 박진희가 가장 자주 느끼는 마음이다. ‘친정엄마’와 ‘자이언트’로 이어지는 연기 변신이 설렘을 불러오고,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있는 환경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그렇다.
박진희는 최근 인터넷 미니홈피를 만들고 ‘박진희의 에코 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회용품 적게 쓰는 방법이나 음식물 쓰레기 구분법 등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사진을 찍어 소개해요. 얼마 전 환경다큐멘터리에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닭 세 마리도 여전히 잘 키우고 있어요. 매일 아침 소중한 달걀을 2개씩 얻고 있죠. 하하.”
흔히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어렵듯, 박진희 역시 “연애는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결여’에서 무려 10살 연하의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며 여성 시청자들의 부러움을 샀는데도 그녀는 “너무 어린 남자가 남자로 보이겠느냐”고 되물으며 화통한 웃음을 보였다.
■ 박진희
1978년생으로 1997년 KBS 2TV 드라마 ‘스타트’로 데뷔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을 알린 것은 1998년작 영화 ‘여고괴담’이었다. 이후 상큼하고 발랄한 이미지로 사랑받아온 그녀는 2000년 영화 ‘하면 된다’로 황금촬영상 신인여우상을 품에 안으며 또 한 명의 스크린 주역으로 떠올랐다. 이후 ‘연애술사’ ‘러브토크’ 등에 출연했다. 2008년 미스터리 사극 ‘궁녀’에서는 명실상부한 단독주연으로 나서 이듬해 황금촬영상 최우수 연기상을 받으며 자신의 위상을 확인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