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령 기수 김귀배. 노장의 투혼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계속된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무려 31년간 모래 뒤집어쓰며 질주
전문가들 “노장투혼 멈추지 않을 것”
25일 서울경마공원 일요일 5경주(1300m)에서 국내 최고령 기수인 김귀배가 감격의 1승을 기록했다. ‘용호약진’(한, 암, 4세, 13조 이희영 조교사)에 기승해 경주 초반 선행을 잡은 후 끝까지 추월을 허용하지 않아 17개월 만에 승리를 맛봤다.
김귀배 기수는 올해 49세다. 2009년 데뷔한 27기 3인방(김혜선, 박상우, 이기웅 기수)이 22세니 이들과는 무려 27년 차이다. 자식뻘 되는 후배들과 경쟁하고 있는 셈. 우승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많이 기쁘다. 후배들에게는 그냥 1승일지 몰라도 내게는 너무도 소중한 1승이다”고 말했다. 최고령 기수로 우승한 사실에 무척이나 감격해 했다.
조교사 출신의 그는 친척의 권유로 1979년 기수로 변신했다. 말을 탄 지 무려 31년이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동안 그는 한결 같이 말 잔등 위에서 모래를 뒤집어쓰며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그를 계속 달리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말을 좋아하고, 말 타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싶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말을 못 탔겠지만 말을 너무 좋아하기에 장수가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1승을 올린다는 게 무척이나 힘겨운 일이지만 1980년대 그는 잘 나가던 기수였다. 1986년 뉴질랜드산 명마 ‘포경선’에 올라 기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랑프리(GI)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대상경주의 운은 그 뿐이었다. 1989년 뚝섬에서 과천으로 경마장이 옮겨지면서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그는 “뚝섬에 익숙했는데, 과천은 주행 방향이 바뀌면서 적응이 안 되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슬럼프가 반복되면서 기승 기회도 줄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수이기에 앞서 한 가정의 가장인 그는 고삐를 더욱 세게 쥐고 말 등에 올라 내달렸다. 이 같은 끈기가 그를 한국 경마 최고령 기수로 만들었다.
경마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한 전문가는 “김귀배 기수는 적자생존의 프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사라지지도, 죽지도 않는 노장 기수의 투혼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