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광현-한화 류현진. [스포츠동아 DB]
취재진 북적북적 대전구장 KS 뺨쳐
한화-SK 야수진들 부담감에 긴장도
30분전 빗줄기 굵어지자 취소 선언
류현진-김광현 “다시 만나자” 다짐
23일 오후 4시59분. 경기 시작까지 불과 1분이 남아 있었다. 그 순간 허운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관의 양 팔은 커다랗게 ‘X’자를 그렸다. 한화 류현진(23)과 SK 김광현(22).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두 좌완투수의 ‘비기스트(Biggest) 매치’는 그렇게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비에도 아랑곳없이 관중석을 메운 7000여 팬들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한화-SK 야수진들 부담감에 긴장도
30분전 빗줄기 굵어지자 취소 선언
류현진-김광현 “다시 만나자” 다짐
○하늘이 만들어 준 기회
긴장감은 일찌감치 고조됐다. 류현진과 김광현이 16일 대전과 문학에서 나란히 선발등판한 직후부터였다. 한화 한대화 감독이 “류현진을 23일 내보내겠다”고 공언한 뒤에는 분위기가 더 달아올랐다. 처음엔 무산되는 듯했다. SK 김성근 감독은 21일 대전 한화전 직후 다음날 선발투수로 김광현을 예고했다. 하지만 김광현은 22일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운명의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담당기자들에게 처음으로 단일경기 선발투수를 예고하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23일 대전 SK-한화전 김광현-류현진 선발 예고, 사상 첫 맞대결’.
한 방송 관계자는 23일 대전구장에 나타나자마자 혀를 내둘렀다. “완전히 한국시리즈구만.” 이미 출장 와 있던 기자들과 서울에서 급파된 취재진이 섞여 덕아웃이 북적였다. 야수들 역시 긴장하기는 마찬가지. 한화 선수들은 훈련이 끝난 뒤에도 쉴 새 없이 덕아웃을 들락거리며 기상 상태를 확인했고, SK 선수들은 “긴장하지 않고 평소 하던 대로 하겠다”는 말로 오히려 부담감을 내비쳤다. ‘빅 매치 단독중계’라는 행운을 잡은 KBSN스포츠도 카메라 한 대를 더 공수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하늘이 앗아간 세기의 대결
하지만 잦아드는 듯했던 빗줄기가 경기 시작 30분 전부터 다시 굵어졌다. 내야 흙 위에는 방수포가 덮였고, 인조잔디가 깔린 그라운드는 슬슬 부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백스톱 뒤편에 서 있던 류현진의 부친 류재천씨는 “이런 날 던지면 어깨에 좋지 않다. 야구 오늘만 할 게 아니니 차라리 맑은 날 다시 붙었으면 좋겠다”고 걱정했다. 그리고 몇 분 후, 결국 공식 취소가 선언됐다.
류현진은 “몸까지 다 풀었는데 못 던지게 돼 아쉽다”고 했고, 류현진에게 달려가 악수를 청한 김광현은 “팬들에게 흥미진진한 게임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기회가 미뤄져 아쉽다. 다음에 꼭 만나 재미있는 야구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반면 한대화 감독은 “우리나라 대표급 투수들인데, 선수보호 차원에서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쉽게 이뤄지면 ‘세기의 대결’이 아니다. 어쩌면 이날 취소로 인해 팬들의 기대감은 더 커졌을 듯하다. 이제 야구계의 눈은 6월 1∼3일 문학구장에서 열리는 두 팀의 3연전에 쏠리게 됐다.
대전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