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빠른 북한 패스에 포백 붕괴
공중볼 사전차단…돌아 들어가라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노리는 허정무호. 첫 단추를 잘 꿰어야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이 속한 B조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제외하면 나머지 3개 팀의 실력이 거의 엇비슷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때문에 그리스와 1차전에서 무조건 승점 3을 확보해야 남은 라운드를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고 준비할 수 있다. 일단 개괄적인 해답이 나왔다.
26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알타흐 캐시 포인트 아레나에서 열린 북한과 그리스의 평가전은 그 답을 주기에 충분했다.
양 팀은 전후반 두 골씩 주고받으며 2-2로 비겼다.
24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한일전 직후 알타흐로 건너온 허정무 감독도 박태하 코치와 직접 현장에서 그리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허 감독은 “현재 유럽 시즌이 막 끝난 탓에 몸 상태가 좋지 않고 결코 100% 전력이 될 수 없다”며 섣부른 판단을 경계했으나 한국과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거의 대등하게 싸운 북한이 보인 경기력은 충분히 참고할 만 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교육국과 대표팀 코칭스태프 분석에 따르면, 그리스는 스리백 위주의 ‘선 수비-후 역습’ 전략을 강조하지만 승리가 필요할 경우, 공격을 강화하기 위해 포백을 가동한다.
“그리스도 우리를 꺾어야 16강에 오를 수 있는데 과연 수비에 전념하겠느냐”는 게 허 감독의 판단이다. 그리스는 3월 세네갈과 평가전(0-2 패)에서도 포백을 내세웠는데, 북한전에는 스피로폴로스-키르기아코스-모라스-빈트라가 수비라인을 구축했다. 물론 결과만 놓고 보면 주전 공격수 정대세에게 두 골을 내줬으니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북한의 투박한 템포와 리듬에도 그리스는 약한 면모를 보였다.
수비에서 유기적인 호흡과 선 굵은 패스를 강조해온 오토 레하겔 감독의 축구는 거의 통하지 못했다. 롱패스에 이은 단조로운 공격 루트도 북한식 ‘벌떼 압박’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오히려 과감한 돌파와 역습을 시도한 북한이 위협적인 중거리포를 날리며 그리스 수비진을 흔든 게 주효했다.
북한 선수단도 몇 가지 조언을 제시했다.
김정훈 감독은 “그리스가 2004년 유럽선수권 우승국으로 빠른 배합과 공중 볼 득점에 능하고 세계적으로 방어가 강하다. 허 감독도 지켜봤지만, 우린 빠른 속공과 능동적인 대처에서 나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대세는 “공중 볼의 경우 낙하지점을 먼저 예측해 점프해야 하고, 다리 높이에 볼이 왔을 때는 주변의 동료와 패스를 주고받은 뒤 뒷 공간으로 돌아 들어가는 형태에 (그리스가) 약했다”고 말했다. 안영학도 “체격과 힘이 좋고, 세트피스에 능하지만 기동력에 약한 인상이다. 포백에서 포지션 간 간극이 넓기 때문에 충분히 파괴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스 헬라스TV 저널리스트 프로토게라키스는 “확연한 경기력 차이를 보이는 스리백과 포백의 활용을 명확히 결정하는 게 월드컵까지 주어진 레하겔 감독의 숙제다. 조직력과 짧고 빠른 패스를 강점으로 삼는 한국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 원하는 결과를 낼 것 같다”는 소견을 말했다.
알타흐(오스트리아)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