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와 함께 하는 월드컵 과학] ⑮ 월드컵과 응원…‘5천만 롤리건’ 세계를 놀라게 하라

입력 2010-06-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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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서포터스 붉은악마는 남아공에도 출현한다. “대∼한민국”의 붉은 함성은 검은 대륙을 후끈 달아오르게 할 전망이다.동아DB

한국 축구 서포터스 붉은악마는 남아공에도 출현한다. “대∼한민국”의 붉은 함성은 검은 대륙을 후끈 달아오르게 할 전망이다.동아DB

쉼없는 난타전…살아숨쉬는 본능 표현

국가 대항전 월드컵 열기 콘서트장 능가
잘못된 열정 ‘훌리건’으로 얼룩지기도

‘롤리건’처럼 경기 즐기는 문화 보여야○축구가 세계를 지배한 이유

게임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원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규칙은 명료한 반면 승리에 이르는 전술은 복잡 미묘하고 깊이가 있어야 한다. 상대를 빈틈없이 포위하면 승리하는 간단한 규칙과 함께 복잡한 전술체계를 지닌 바둑이 좋은 예다. 축구가 럭비, 하키 등 영국에서 체계화된 단체 구기 종목 중 유일하게 세계적으로 대중화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같은 규칙과 전술의 조화 덕분이다.

축구의 규칙 체계는 비교적 단순하다.

손을 제외한 신체 모든 부위를 사용해 공을 다루며, 득점을 많이 한 팀이 이긴다. 복잡한 규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법전 이상으로 방대한 규칙을 이해해야만 경기를 즐길 수 있는 야구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축구경기 승리를 위한 전술은 간단치 않다. 우리선수와 상대선수 간 체력적/기술적 특성, 기후, 고도 등 물리적 조건, 감독의 선수 장악력 및 경기 이해 정도 등 다양한 전술적 요소가 승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축구경기 특유의 단순 명료한 규칙체계는 초보자로 하여금 쉽게 접근하도록 만들고, 복잡한 전술은 지속적으로 경기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축구의 응원

미국에서 고안된 미식축구, 농구 등 단체 구기종목과는 달리 영국을 발원지로 하고 있는 축구는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경기의 맥이 끊어지지 않는다. 감독의 작전지시 등으로 인한 타임아웃이 없고, 선수교체도 제한된다.

공이 라인 밖으로 나가는 순간 어디선가 달려온 볼 보이가 공을 던져주면서 경기 속행을 강요하며, 선수가 고의로 시간을 끌고 있는 기미가 보이면 심판은 여지없이 옐로카드를 쳐든다. 그래서 축구에는 치어리더가 없다. 치어리더는 타임아웃으로 경기의 맥이 끊어지는 순간, 관중의 흥미 저하를 방지하기 위한 조처다.

하지만 90분간 시종일관 난타전을 벌이는 축구는 경기 속성 상 이런 인위적 개입이 경기의 몰입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간섭일 뿐이다. ‘축구란 수학이 아니다. 살아 숨 쉬는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운동이다’고 말한 펠레는 축구의 이런 속성을 명확히 대변하고 있다.

하여 축구 응원은 선수가 발산하는 에너지와 스펙터클에 대한 단순한 반응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의미에서 축구장 열기는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 장에 가깝다. 경기장과 관중석의 감각적 유대가 지나칠 정도로 공고하고 에너지로 가득 찬 그 곳의 열광은 인위적이지 않고, 적나라한 본능으로 충만하다. 그래서 축구장 응원은 언제나 날것의 싱싱함과 원시적 야만성이 공존한다.


○훌리건과 롤리건

콘서트 장과는 달리 축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는 경쟁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대립구조를 보인다. 특히 국가적, 민족적, 지역적,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을 달리하는 라이벌인 두 팀이 대결하게 되면 일부 관중은 거의 숭배에 가까운 헌신과 열정으로 경기를 대한다. 그 결과 경기장 열기는 종종 유혈사태로 비화된다. 39명 사망, 454명 부상과 96명 사망, 170명 부상을 기록한 헤이셀, 힐스버로 참사를 야기한 훌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건이 초래한 결과는 더욱 참담하다. 헤이셀 비극 이후 유럽축구연맹(UEFA)은 5년간 모든 영국 클럽(리버풀은 7년)의 유럽대회 참가를 금지시켰고, 영국의 국기로 상징된 프로축구는 근 20여 년 간의 쇠퇴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부정적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헤이셀 비극이 일어난 1985년 유네스코는 덴마크 축구팬인 속칭 ‘롤리건’을 대상으로 페어플레이상을 수여했다. 롤리건은 ‘조용하고 질서정연한’이란 뜻의 덴마크어 롤리(rolig)에서 파생됐다. 1984년 파리에서 열린 유로84 결승전에서 덴마크와 스페인의 경기에서 덴마크가 패배했지만, 훌리건과는 달리 단 한 건의 폭력사태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를 통해 그들의 유명세가 확산되기도 했다. 국가가 울리면 무조건 따라 불러야 하고 상대국 국가에 예의를 갖추어주는, 그리고 맥주를 뜻하는 단어를 10개 국어 이상 알아야 한다는 그들의 회원자격은 유쾌하기까지 하다.

훌리건을 연구한 학자들은 훌리거니즘의 출현 원인을 계급과 이념으로 설명한다. 전통적으로 노동계급의 스포츠였던 축구가 상업화 과정에서 노동계급을 소외시킨 것에 반발하거나, 과거부터 유럽지역의 고질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신나치주의와 같은 폐쇄적 민족주의와 축구가 결합되었다는 설명이다.


○응원문화의 진화

그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롤리건의 사례는 훌리건의 문제를 비춰보는 거울이기도 하다.

묘한 이야기지만 훌리건은 축구장에 모여 있어도 축구에 덜 주목한다. 그들은 현대화된 일상생활에서 폭력성의 유일한 탈출구인 축구경기장의 분위기를 즐길 뿐이다.

반면 롤리건은 축구를 축구로서 즐긴다. 운동장에서 열정적으로 응원하지만 욕설을 자제하며, 경기 후 주점에서 목청껏 노래하지만 객기를 부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롤리건은 축구를 축구로만 즐길 줄 아는 성숙한 팬인 것이다. 일상과 마찬가지로 축구 또한 정치적 이념과 무관할 수 없다. 한일전 사례에서 보듯 민족주의는 경기에 대한 열기를 높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실 월드컵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도 실은 그 경기가 국가대항전으로 치러지며, 알게 모르게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구조를 지녔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독재국가시절 우리의 월드컵은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야 하는 강박이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뼈를 묻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본선무대에 섰으며, 국민들도 이런 분위기에 중독 됐다. 그러나 앞서 두 번의 월드컵을 통해 우리 국민은 월드컵이 명실상부한 전 세계인의 축제이며, 우리도 이를 충분히 즐길 자격과 능력이 있다는 점을 학습 받았다.

분명 월드컵을 앞둔 우리의 모습은 롤리건의 분위기와 가까워지고 있으며, 이는 발전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2010년 6월의 월드컵을 통해 우리 국민은 또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대목이다.


한태룡 KISS 선임연구원

실천형 스포츠 애호가이며 스포츠사회학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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