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가운데)이 12일(한국시간) 그리스와의 2010남아공월드컵 B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후반 추가골을 넣은 뒤 풍차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포트 엘리자베스(남아공) |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scoopjyh@donga.com
근성+실력 갖춘 ‘완벽한 본보기’
아르헨티나전 새역사 창조 보라
허정무호 ‘캡틴’ 박지성(29·맨유)은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유독 “축구를 즐기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박지성은 12일(한국시간) 그리스와의 남아공월드컵 B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후반 7분, 상대 추격에 쐐기를 박는 추가골을 작렬했다. 거구의 상대 수비수들이 필사적으로 앞길을 막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골문 앞까지 전진한 뒤 마지막까지 골키퍼 움직임을 보고 침착하게 왼발 슛으로 그물을 갈랐다. 2002한일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 전 결승골, 2006독일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프랑스 전 동점골에 이어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월드컵 3개 대회 연속 골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3골 모두 유럽 팀을 상대로 넣었다. 역대 월드컵 한국선수 득점랭킹(3골)에서도 안정환(34·다롄 스더)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날 골을 넣은 뒤 그는 양 팔을 크게 휘젓는 이른바 ‘풍차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정말로 월드컵을 즐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박지성은 이날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됐고, 그의 골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뽑은 ‘오늘의 골’에 뽑혔다. 맨유 선배이자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미드필더 브라이언 롭슨(53)은 “박지성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타입의 주장”이라며 “한국팀에는 특히 성실함과 도덕성이 크게 요구되는데 박지성은 그러한 측면에서 완벽한 본보기”라고 극찬했다.
○주장으로 맞는 이번 월드컵
2002한일월드컵은 ‘무명’이던 그를 일약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처절한 생존 경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살아남기 위해 한 경기 한 경기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2006독일월드컵은 조금 달랐다. 맨유에서 뛰면서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대회 전 당했던 무릎 부상 후유증이 괴롭혔다. 티를 낼 수는 없었지만 100%%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세 번째 도전인 이번 월드컵에서 박지성은 ‘주장’이라는 중책까지 맡았다. 싫든 좋든 동료들을 독려하고 때로는 채찍질하며 팀을 리드해야 한다. 그가 택한 리더십의 모토는 ‘솔선수범’이었다. 그라운드에서 누구보다 부지런히 뛰어 다니며 찬스를 엮어냈다. 그리스와의 경기 후반 20분 하프라인 근처에서 볼을 상대에 인터셉트 당하자 30여 미터를 뒤 쫓아 기어이 다시 뺏어냈다.
근성 바이러스는 대표팀 전체에 퍼졌다.
기성용은 “전반에 너무 많이 뛰어 체력이 소진 된 거 아니냐”고 묻자 “제가 안 뛰면 누가 뛰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정우는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이 활발해 중원 장악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이변을 위해
한국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와 경기를 남겨 두고 있다. 두 경기 결과에 따라 16강도 충분히 가능하다. 박지성이 월드컵 무대에 발을 디딜 때마다 한국축구의 새 역사가 아로새겨 진다. 앞으로 또 어떤 기록을 달성해낼지 아무도 모른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고의 팀이다. 훌륭한 선수도 많다. 하지만 스페인과의 평가전 때 잘 한 기억을 떠올리며 경기한다면 좋은 결과 있을 것이다. 월드컵은 이변이 많이 일어난다. 우린 그 이변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박지성은 각오를 다졌다.
포트 엘리자베스(남아공)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