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의 박수가 그들을 춤추게 한다

입력 2010-06-14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그리스 잡은 ‘소통의 힘’
원정월드컵 첫 16강 부담스런 짐 불구
자유토론 통해 어린선수들 자신감 심기
“아르헨도 해볼만해” 용기있는 출사표


허정무 감독은 12일(한국시간)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90분 내내 벤치에 앉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때로 뒷짐을 지기도 했지만 이날 그의 손동작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다름 아닌 ‘박수’였다.

좋은 플레이는 물론 실수가 나왔을 때도 큰 소리로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교체 투입될 선수에게는 가까이 다가가 어깨에 한 손을 올리고 한참을 다독이다가 내보냈다.

허 감독이 5월 파주NFC에 선수들을 소집한 뒤 가장 먼저 강조한 게 바로 ‘소통’이었다. 그리고 이는 그라운드 안에서 ‘박수’로 표면화됐다.

한국인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첫 승을 따낸 밑거름이 바로 ‘소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담을 없애라

허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부담감에 시달렸을 게 분명하다. 단순히 월드컵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 무대는 국내 지도자들의 지도력을 저울질하는 시험대이기도 했다.

한국은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 2006독일월드컵 원정 첫 승을 일궜지만 지휘봉은 모두 외국인 감독이 잡고 있었다. 국내 지도자들은 남아공으로 떠나는 허 감독에게 “월드컵 16강으로 국내 지도자들의 자존심을 찾아 달라”고 당부했다. 더구나 이날 전임 감독들인 김정남(1986), 이회택(1990), 차범근(1998)이 직접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소 부담감을 표현하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늘 “마음이 편안하다”고 사람 좋은 웃음만 지었다.

가장 신경을 쓴 부분도 선수들의 부담감을 줄여주는 것이었다. 지난 월드컵에서 부담감이 선수들의 몸을 굳게 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월드컵 첫 출전인 김정우(성남)와 이청용(볼턴)은 “감독님이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도움이 안 된다. 생각은 조금만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부담감을 떨쳐버린 태극전사들은 평소 실력을 100%% 발휘했다.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상대를 압박했고, 전반 초반부터 여유 있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이른 시간 선제골까지 터지자 그리스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적장인 오토 레하겔 감독은 “우리 팀 선수들은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한국 선수들은 빠르고 공이 있는 곳이라면 계속 달려갔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대화의 장 마련

경기 후 믹스트 존(공동취재구역)을 지나친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말이 바로 ‘대화’였다.

허 감독은 경기 전날에도 그리스 경기 장면이 담긴 편집 동영상을 선수들끼리만 보고 자유 토론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 대화는 직위, 나이, 포지션, 이름값 등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영표는 “같은 포지션 선수들끼리는 물론이고 수비수와 미드필더, 수비수와 공격수, 공격수와 미드필더들도 서로에게 원하는 점 등을 털어 놓았다”고 밝혔다. 차두리 역시 “활발히 대화가 이뤄질 때 더 좋은 팀으로 발전한다. 전에 비해 활발히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된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이제 시작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이제 3경기 가운데 단 1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한국은 2006독일월드컵에서도 토고를 꺾으며 초반 피치를 올렸지만 이어 프랑스, 스위스를 상대로 1무1패를 기록하며 16강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플랜이 이미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허 감독은 “아르헨티나는 우승후보다. 좋은 선수가 많다. 상당히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위축 되지 않는다면 해볼만 하다. 상대가 강해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강한 팀이라고 결코 주눅 들고 그러진 않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포트 엘리자베스(남아공) |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