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기자의 남아공 일기]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희망 봤다” 훌쩍 커버린 차두리

입력 2010-06-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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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스포츠동아 DB]

17일(이하 한국시간)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을 마치고 차두리에게 “이번 월드컵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때는 솔직히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그날 경기에 뛰지 못했으니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이겠거니’ 짐작만 했을 뿐입니다. 나이지리와의 경기 뒤 그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오늘은 실수를 통해 또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겠다’라고 혼자 추측을 했습니다.

27일 우루과이에 패해 16강이 좌절된 후 믹스트 존에서 차두리를 다시 만났습니다. 패배의 울분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인터뷰 중에도 울음을 겨우 참는 듯 했고 말을 할 때마다 입술을 부르르 떨더군요.

경기 소감 등을 들은 뒤 인터뷰 말미 “인생을 배운다는 건 어떤 의미였냐”고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당연히 패배-좌절-실패 후 성장-성숙 등의 답변을 예상했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의외였습니다.

“훈련장과 경기장을 오갈 때 대표팀 버스를 보며 밖에서 손을 흔들어 주는 해맑은 표정의 천진난만한 흑인 아이들을 보며 이런 게 바로 축구의 힘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 아이들 눈에서 희망을 봤고 내가 월드컵 대표팀에 뽑혀 저 아이들에게 이런 작은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월드컵에 오기 전에는 남아공하면 위험한 곳,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정말 배우고 느낀 게 많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누군가가 몽둥이로 머리를 세차게 후려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남아공에 와서 머릿속에 늘 맴돈 생각은 ‘어떻게 하면 대표팀을 좀 더 잘 취재할 수 있을까’ ‘대표팀이 16강에 오를 수 있을까’ ‘어느 나라가 우승을 차지할까’ 등이었습니다. 가끔 여유가 생길 때면 ‘여기까지 왔으니 케이프타운 한 번 가봐야 하는데 대표팀 경기가 없어 아쉽다’며 입맛을 다시거나 ‘더반이나 포트 엘리자베스의 바닷가도 볼만하구나’는 정도?

20일 이상 남아공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흑인 아이들과 마주하면서도 그네들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본 적이 없었네요.

한국의 월드컵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남아공월드컵은 중반을 넘어 종반을 향해 갑니다. 이번 대회가 왜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열렸고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이제야 곱씹어봅니다.포트 엘리자베스(남아공)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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