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감독 ‘뚝심의 세대교체…젊은피를 끓게하다’

입력 2010-07-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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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감독 파란만장 2년 6개월
허정무 감독은 ‘아름다운 퇴장’을 택했다. 대표팀 사령탑 재계약 포기 의사를 스스로 밝혔다. 월드컵 본선을 치르기 전부터 이미 마음속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국내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16강의 위업을 달성하면서 연임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귀국 행 비행기에서 연임 제의를 받고 즉답을 피했던 건 감독직 유지를 고민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축구협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때문이었다.

허 감독은 2일 기자회견에서 “당분간 재충전 시간을 가지면서 공부를 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2007년 12월, 외국인 지도자 시대를 마감하고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그는 이로써 2년 6개월여의 감독직을 마감했다.

○굴곡의 2년 6개월

허 감독은 기자회견 전날도 제대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차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지난 2년 6개월을 회고하다보니 밤을 꼬박 샜다. 2007년 12월, 그는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며 “남은 축구인생을 모두 여기에 걸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허언이 아니었다. 2002년 히딩크의 4강 달성 이후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국내 지도자들의 명운이 바로 그의 두 어깨에 달려 있었다.

굴곡도 많았다. 대표팀 감독은 독이 든 성배로 불린다. 한 두 차례 좋지 못한 경기를 펼치면 모든 비난 여론을 한 몸에 받아야 한다.

허 감독 역시 월드컵 예선을 거치며 한때 경질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뚝심 있게 자신의 계획대로 대표팀을 이끌었고, 7회 연속 본선 진출과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이라는 값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세대교체와 유쾌한 축구

월드컵 16강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러나 16강 달성을 위해 허 감독이 추구했던 바는 향후 한국축구 발전에도 밑거름이 될 것이다.

성공적인 세대교체와 즐기는 축구로 요약될 수 있다.

허 감독은 2002년의 성과가 한국축구 부흥으로 이어지지 못한 걸 늘 아쉬워했다. 적기에 세대교체를 하지 못한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그래서 대표팀 체질개선의 첫 번째 단계로 과감한 세대교체를 택했다.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할 때부터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이었다. 한국은 이청용, 기성용, 김보경, 이승렬 등 20대 초반의 재능 있는 선수 발굴에 성공했다. 다음 월드컵 때 또 한 번의 16강을 기대해도 좋은 이유다. 그가 본선을 앞두고 내세운 모토 ‘유쾌하고 당당한 축구’도 눈여겨볼만하다.

한국은 2002년을 제외하고는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늘 100%%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왔다. 허 감독이 “이번에는 결과에 관계없이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망의 월드컵 무대에서 허 감독은 선수들이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늘 애썼다.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르헨티나에 1-4로 대패한 뒤 “잘 했다”고 오히려 칭찬을 했다. 우루과이와 16강전을 앞두고는 “경기를 즐기자”고 말했다. 이영표는 “국내 감독에게서 경기를 즐기라는 말을 들은 건 이번이 처음 이었다”고 털어놨다.

다수의 축구 팬과 전문가들이 16강 진출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게 바로 16강전 경기 내용이었다. 16강이라는 부담감이 큰 경기에서 한국은 객관적인 전력상 우위에 있는 우루과이를 90분 내내 매섭게 몰아쳤다.

우리가 가진 기량을 맘껏 발휘한 덕분이었다. 허 감독이 주창한 유쾌하고 당당한 축구의 힘이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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