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연맹과 대구FC의 안이하고 무책임한 행정이 때 마침 쏟아진 폭우에 씻겨 사라졌다. 15일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벌어진 대구-포항 스틸러스의 K리그 17라운드를 본 소감이다.
경기 시간부터 비상식적이었다. 한여름 주말 경기의 킥오프 시간이 오후 5시였다. 오후 4시 경기가 더운 날씨를 감안해 1시간 연기됐다.
당초 왜 4시로 잡혔는지 살펴보면 혀를 찰 수밖에 없다.
대구 시민운동장 바로 옆 야구장에서는 오후 5시부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홈경기가 벌어지는 데 양 쪽 다 조명탑을 가동하면 전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낮 경기를 했다. 이미 이런 이유로 7월 18일 대구-수원 경기가 오후 4시에 한 차례 벌어졌다.
1시간 연기된 사연은 더 기가 막히다. 7월 18일 경기를 오후 4시에 치러보니 1시간 늦춰 시작해도 조명탑 없이 경기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명색이 한국 최고 축구리그의 경기 시간이 이렇듯 마구잡이로 결정됐다.
그런데 이날 변수가 생겼다. 날씨가 심상찮았다. 경기 직후 먹구름이 끼면서 주변이 어둑해졌다. 전반 38분 경, 포항 서포터즈에서 “불 켜라” “불 켜라”는 외침이 나왔다. 곧이어 6개의 조명탑 중 본부석 맞은 편 중앙을 시작으로 3개의 조명탑에 불이 들어왔다.
이 때 바로 옆 야구장은 조명탑을 모두 켠 채 게임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경기감독관에게 “만일 전력이 나가면 그에 대한 대책은 있느냐”고 묻자 “그건 잘 모르겠다. 홈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옆에 있는 대구 관계자는 “3개 이상 가동하면 불 나가는 데”라고 중얼거렸다. 전력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를 대비한 예비 대책도 없이 그냥 경기를 강행했다. 다행히 별 다른 불상사는 없었지만 파행으로 흐를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었던 셈이다.
후반 시작과 함께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사는 물이 잔뜩 고여 마치 수영장처럼 돼 버린 그라운드에 쏠렸다.
조명탑 문제에 가슴 졸이던 몇몇 이들에게는 불행 중 다행이었을 게다.
그러나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프로연맹은 이번 일을 교훈 삼아 각 구단에 확실한 홈구장 대책 마련을 지시해야 한다. 이번에 사고가 없었다고 슬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홈구장 사정을 이유로 앞으로 제2, 제3의 대구FC와 같은 구단이 나오면 어찌할 것인가? 그 때도 아무 대책 없이 그저 사고 안 나기를 간절히 바랄 것인가? 더 큰 망신을 당하기 전에 바로 잡을 건 바로 잡자.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