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요타의 정해일 감독이 일본여자농구에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여자농구에서 10년 넘게 지도자로 활약하며 지난 시즌 약체 도요타를 일약 창단 첫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 日 여자농구 ‘코리안 신화’ 정해일 도요타 감독
97년 SK여자농구 우승후 일본행
손짓 발짓으로 日 선수들과 소통
지난 시즌 창단 첫 챔피언십 진출
“목표? 우승 달성한 후 한국 컴백”
“제가 한국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을 걸요?”(웃음)
일본여자농구 도요타 앤틸롭스의 사령관은 한국인이다. SK 여자농구팀을 정상에 올려놓은 뒤 돌연 일본행을 결정한 정해일 감독(51)이 바로 그 주인공. 1997년 일본통운부터 2010년 도요타까지 10년 넘게 일본여자농구팀 사령탑을 맡고 있는 그를 나고야 도요타체육관에서 만났다.
● 일본행 이유? 나를 시험해보고 싶어서!
SK 여자농구팀이 우승한 1997년 정 감독은 돌연 일본행을 택했다. 한국여자농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감독으로는 의외의 행보였다. 정 감독은 “당시 혈기왕성한 나이였고 감독으로서 내가 어느 정도 자질이 있는지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마침 2부리그였던 일본통운에서 감독직을 제안해왔고, 그는 그렇게 일본과 인연을 맺었다.
● 일본어도 모르던 일(日)자무식
호기롭게 일본땅을 밟았지만 처음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일본통운 사장이 직접 공항까지 마중 나왔지만 체육관으로 이동하는 2시간 내내 단 한 마디도 나누지 못했던’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일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정 감독은 일부러 통역을 곁에 두지 않았다. ‘코치가 한 팀을 이끌기 위해서는 선수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 직접 소통해야 한다. 표면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본인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정 감독은 나이 마흔에 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비록 손·발짓을 다 동원하고 단어만 나열하는 식의 대화였지만 선수들과 직접 얘기를 주고받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1999년 일본통운이 해체된 뒤(1999∼2001 한국 국민은행 감독) 2002년 도요타로 다시 스카우트될 수 있었던 이유도 정 감독의 이런 적극적인 태도 덕분이었다.
● 도요타를 꼴찌에서 2등으로
하지만 도요타에서도 시련은 계속됐다. 만년 꼴찌다보니 ‘돈 많이 받고 취미활동으로 농구하는’ 선수들이 태반이었다. 정 감독은 “내가 훈련을 시작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2∼3명이 그만둘 정도로 태만함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어떻게든 선수들의 인식을 바꿔야 했다. 마음을 열게 하려고 한 달에 한 번씩 아내가 일본에 오면 선수들을 모두 집으로 불러 맛있는 것을 해먹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 감독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부임 첫 해에는 8개 팀 중 7위에 그쳤지만 선수들과 소통하기 시작한 2번째 시즌부터 5위∼3위∼4위로 팀 순위가 급상승했다. 지난 시즌에는 강호 조모(JOMO)에게 3전패를 당하며 2위에 머물렀지만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챔피언십리그 무대도 밟았다.
● 한국 땅이 그립다!
정 감독은 도요타와 벌써 9년째 인연을 맺고 있다. 감독으로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팀 전용체육관이 생겼을 때. 그는 “원래 도요타 여자농구팀 체육관은 시골학교 체육관처럼 허름했다. 성적이 나기 시작하면서 에어컨이 생겼고, 난방기구가 생겼다. 3년 전에는 본사에서 전용체육관을 지어줬다”며 웃었다. 이제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해진” 정 감독에게 목표를 묻자 “팀의 우승”이라고 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한국으로 금의환향하는 꿈을 꾸고 있다. “일본생활에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한국땅이 그립네요. 좋은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정 감독은 환하게 웃으며 다시 코트로 향했다.
나고야(일본)|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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