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는 자’와 ‘쫓는 자’, 1승에 대한 간절함은 마찬가지였다. 4위 굳히기를 노리는 롯데나 대역전 희망을 되살리려는 5위 KIA에게 2일 광주 맞대결은 평소와 의미가 달랐다. 전날까지 양팀의 간격은 4.5게임. 3일까지 열리는 2연전 결과에 따라 롯데 4위가 사실상 굳어질 수도 있고, 또는 KIA가 2.5게임차로 따라붙어 4위 싸움을 혼전 구도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상황.
더욱이 지난달 24일 사직 맞대결에서 KIA 윤석민의 사구로 관중들의 오물 투척 사태도 빚었던 터라 ‘사생결단’으로 나선 양팀 분위기는 평소와 달리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 윤석민 팬 클럽의 음료수 선물
롯데 선수들이 광주구장에 도착, 막 훈련을 시작하려고 할 때 3루측 롯데 덕아웃쪽 뒷문으로 한 여성팬이 찾아왔다. KIA 윤석민의 ‘다음카페’ 팬 클럽회원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회원들의 뜻을 모아 준비했다며 음료수 5박스를 전달했다. 함께 남기고 간 편지에는 ‘홍성흔 선수의 빠른 쾌유와 조성환 선수의 그라운드에서의 멋진 활약을 응원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주장이자, 윤석민의 사구를 맞았던 조성환은 “석민이 팬클럽 여러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면서 “석민이가 이런 팬들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빨리 그라운드에 복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성흔은 광주구장 도착에 앞서 윤석민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어서 빨리 털어내고 일어나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지난 24일 사직경기 때 흥분한 일부 관중이 페트병을 그라운드에 던지고, KIA 선수들이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일부 팬과 충돌을 빚는 등 불상사가 발생했다. 장소가 사직에서 광주로 바뀌면서 혹시 또 한번의 소동이 일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왔다. 롯데 구단이 사전에 KIA 쪽에 ‘경비 인력을 늘려 달라’고 부탁한 것도 그래서였다.
KIA 역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고, 2일 광주구장에는 평소 50명인 경비인력이 80명으로 증가 배치됐다. 또 관할서인 광주 북부경찰서에서 요청, 경비병력 2개 중대도 대기했다.
○ 싹쓸이 의지 다진 KIA
경기 전 KIA 선수단은 ‘1승 1패도 안 된다. 2승 다 따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롯데가 직전경기에서 3연패를 당하는 등 페이스가 좋지 않다는 점도 거론하며 ‘한번 해보자’는 각오가 느껴졌다. 2연전에서 1승1패를 하면 4.5게임차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잔여경기수를 감안하면 사실상 뒤집기가 힘들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황병일 수석 코치는 “두 게임 다 잡아야 한다”고 했고, 하루 전 총력전 의지를 밝혔던 조범현 감독도 “팬을 위해서라도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고 승리에 대한 강한 갈증을 내비쳤다.
○ 긴장감 풀지 않은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나머지 경기에서 몇승 몇패를 거둬야 4강이 안정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당장 오늘 승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오늘도, 내일도 이겨야 한다”면서 끝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을 나타냈다. 상대가 순위 경쟁상대인 KIA인만큼, 1승이 어느 때보다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음에 주목했다. 그러나 절박한 KIA와 달리 상대적으로 여유도 느껴졌다.
박영태 수석코치는 “두 게임 다 진다고 해도 우리가 4강에 갈 것”이라고 했다. 한 프런트는 “우리 입장에서는 1승1패만 하고 가도 대만족”이라면서 “2패만 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KIA가 (4강권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냐. 우리 입장에서는 최악 상황만 면하면 된다”고 했다.
○ 롯데 완승, 싱겁게 끝난 결과
다행히 우려했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7회 롯데 가르시아가 바뀐 투수 박경태의 몸쪽 높은 공을 엉겁결에 파울로 걷어낸 뒤, 발끈한 포즈를 취하며 긴장감이 돌았지만 이내 진정됐다. 롯데팬과 KIA팬이 뒤섞여 있는 3루측 스탠드에서 잠시 소요가 일자, 곧바로 경찰 병력이 투입됐다.
양팀 모두 1승에 대한 간절함이 남달라 팽팽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게임은 롯데의 일방적인 우세로 끝이 났다. KIA는 믿었던 선발 양현종이 2회부터 연속 점수를 내주며 무너진게 뼈아팠다.
롯데 타선은 차근차근 점수를 낸 반면, KIA 타선은 상대 선발 송승준에게 6회 원아웃까지 철저하게 침묵하는 등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4회 1사 만루위기에서 이상화에게 마운드를 건네주고 조기강판된 양현종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 없었다. 4강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짐을 직감한 듯, 그것이 자기 책임이라는 듯 무거웠다. KIA 덕아웃 역시 비슷한 분위기였다.광주 |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