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중 몸에 맞는 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얼마 전 KIA 투수 윤석민이 롯데 조성환에게 몸에 맞는 공을 내준 뒤 고개 숙여 팬들과 상대팀에게 사과하는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HP(Hit by Pitch) 이후 과연 사과를 해야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사실 정답이 따로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로 한정해서 본다면 ‘사과하지 않는다’가 정답에 가깝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메이저리그가 절대적으로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이 부분에 대해 메이저리그 전·현직 투수코치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일단 메이저리그 투수코치의 경우 아주 노골적으로 몸쪽 승부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스트라이크존의 크기는 상황에 따라서 혹은 심판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경기 중에 투수는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스트라이크존을 이용하는 것이 능력이라고 할 수 있고, 그를 위해서는 몸쪽공이 필수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를 갖고 있는 만큼 몸쪽 승부를 하는 중에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마련인 HP는 야구의 일부분이라는 게 그들의 철학이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마이너리그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을 시키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몸쪽을 던져라!”콜로라도 밥 애포대카 투수코치가 신인급 선수들에게 매일 환기시켜주던 한마디다.
메이저리그 투수 쪽에서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과연 HP 이후 사과를 해야 하는가? 그 부분은 명확하지 않지만 전반적인 인식은 이렇다. 한때 서재응을 지도했던 뉴욕 메츠 릭 피터슨 투수코치(현 밀워키 투수코치)는 이렇게 정리했다. “결국 야구는 스트라이크존 전쟁이다. 스트라이크존을 정복해야 이길 수 있다. 전쟁터에서 사과하는 사람을 난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메이저리그에서는 ‘chin music’이라는 표현이 있다. 턱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다. 공이 턱 근처를 스쳐지나가는 순간 느껴지는 바람, 공의 실밥과 공기저항에 따른 소리를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결국 몸쪽공이라는 의미다.“직구, 체인지업, 슬라이더 만큼 중요한 것이 chin music이다.”이건 애포대카 코치의 얘기다.
만약 윤석민의 사과가 한국이 아닌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연출됐다면? 솔직히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곳이 홈그라운드라면 홈팬들의 질타를 면할 수 없었을 것이고, 동료들의 시선 또한 따뜻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구는 전쟁이다. 경기가 벌어지는 필드 안에서는 적어도 상대팀이라면 선후배가 없는 것이 메이저리그의 야구 철학이다.대니얼 김 Special Contributor
OB 베어스 원년 어린이 회원으로 어릴 적부터 야구에 미쳤다. 85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뒤 뉴욕 메츠직원을 거쳐 김병현과 서재응의 미디어 에이전트코디네이터로그들과 영욕을 함께 했다.(twitter.com/danielkim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