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솔직하게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PC를 사용해오면서 키보드는 이른바 ‘묻지 마 키보드’를 써왔다. ‘멤브레인’이니 ‘기계식’이니 하는 키보드의 접점 방식은 최근까지도 무슨 소리인지 몰랐고 키보드는 그저 누르면 누르는 대로 입력되기만 하면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왔다(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죄는 아니다. 하지만 만약 키보드 입력 방식이 궁금하다면 관련 기사(http://it.donga.com/openstudy/111)를 참고하자).
그렇게 ‘묻지 마 키보드’를 써온 지 어언 10년(물론 중간에 키보드를 몇 번인가 다른 ‘묻지 마 키보드’로 바꿨었다). 그동안 잘 버텨오던 키보드의 키들이 하나둘씩 작동하지 않기 시작하며 곧 운명하실 조짐이 보였다. 그래서 슬슬 새 키보드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때마침 키보드 리뷰를 하게 되었다.
키보드를 받아보니 여태껏 봐왔던 키보드 케이스 중에 가장 화려하고 묵직하다. 케이스를 살펴보니 ‘마이크로소프트 사이드와인더 X4(이하 사이드와인더)’라는 제품명과 함께 ‘정확한 게이밍 컨트롤’이라는 말이 쓰여있다. 그 문구를 보고 나서야 게이밍 키보드라는 것을 알았다. 어쩐지 케이스부터 화려하더라. 머리털 나고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게이밍 키보드.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설치 및 외형 살펴보기
케이스를 열어보니 상자가 하나 더 있고 그 안에는 키보드와 설치 디스크, 설명서가 들어 있다. 키보드를 포장에서 꺼내보니 이거 생각보다 묵직하다. 전체적인 디자인도 꽤 멋지다. 전체가 검은색에 키와 키 사이에 하이그로시 처리가 되어 있어 번쩍번쩍하다. 본격적으로 게임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역시 게이밍 키보드여서 그런 것인지, 내가 알고 있는 키들 말고 다른 키들이 보였다. 다른 부분은 보통의 키보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Esc 키가 있어야 할 자리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키가 있다. 키보드의 왼쪽 끝에는 세로로 S1부터 S6까지 6개의 키가 있다. 기능키(F1~F12) 위에는 멀티미디어 키들(재생, 이전 트랙, 다음 트랙, 음 소거, 볼륨 업, 다운 키)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의 키패드 위에는 계산기 키가 있다. 솔직히 멀티미디어 키와 계산기 키를 빼고는 도대체 무슨 기능을 가진 키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나머지 키들은 대체 무슨 기능을 가진 것인가?’하고 고민을 해보았지만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제품 설명서를 찾아보니 각 키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다. Esc 키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던 키는 스토리지 전환 키라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있는 S1부터 S6까지의 키는 매크로 키였다. 스토리지 전환 키 옆에 있는 키는 매크로 기록 키고 볼륨 조절 키의 오른쪽에 있는 키는 백라이트 키였다. 하지만 제품 설명서에는 제품을 다루는데 주의해야 할 점이나 각 키에 대한 소개는 나와 있었지만 실제로 각 키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의 사용법은 나와 있지 않아 일단 패스하고 다른 부분들을 살펴보았다(나중에 보니, 각 키에 대한 설명은 설치 CD에 들어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키보드’라는 프로그램의 도움말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키보드의 아래쪽을 보니 팜레스트가 있다. 하이그로시 처리가 되어 있는 키 주변 부분과 다른 재질로 되어 있어 탈부착이 가능할 줄 알고 살펴보니 키보드와 한몸이다. 평소에 팜레스트를 빼고 쓰던 버릇이 있어 개인적으로 키보드 자체에 달린 팜레스트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비단 본 리뷰어만 이렇게 사용하는 것은 아닐 터. 사용자가 자기 취향에 맞춰 사용할 수 있도록 탈부착이 가능하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일단 키보드를 연결하려고 보니 USB 단자에 뭔가 이상한 것이 붙어 있다. 뭔가 해서 읽어보니 PC에 키보드를 연결하기 전에 함께 동봉되어 있는 설치 CD에 들어 있는 소프트웨어를 먼저 깔고 연결하라고 쓰여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면서 플러그 앤 플레이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제조사에서 권장하는 대로 하는 것이 제품을 사용하는 데 있어 더 좋을 것 같아 시키는 대로 함께 들어 있던 CD를 넣고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PC에 키보드를 연결하니 별문제 없이 인식되었고 키보드에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백라이트 기능이다. 이런 것이 있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이거 생각보다 멋지다. 백라이트 기능은 그 밝기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데 어두운 곳에서 작업을 해야 하거나 어두운 곳에서 PC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축복과도 같은 기능이다. 그런데 밝은 곳에서 백라이트를 켜놓으려고 하니 멋지기보다는 되려 신경만 쓰여 밝은 곳에서 사용할 때에는 그냥 꺼두었다.
기능 확인 및 설정하기
사이드와인더에는 ‘묻지 마 키보드’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2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매크로와 안티 고스팅 기능이었다. 먼저 매크로 기능은 매크로 키 6개(S1~S6)에 각각 다른 단축키를 저장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저장 가능한 스토리지가 총 3개라서 실질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단축키는 최대 18개다. 스토리지를 바꾸고 싶을 때에는 스토리지 변환 키를 누르면 된다.
사이드와인더에서 단축키를 설정해보자
단축키는 어떻게 지정할까? 단축키를 설정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연결 전에 설치했던 마이크로소프트 키보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마이크로소프트 키보드를 실행하면 키 설정 탭에 매크로 지정/관리가 있다. 매크로로 지정하고자 하는 키를 선택하고 매크로 지정/관리로 들어가면 매크로 편집기가 뜨는데, 왼쪽 아래의 새로 만들기를 누르고 오른쪽의 편집기를 클릭한 뒤 단축키로 지정하고 싶은 내용을 입력하고 저장하면 매크로가 지정된다.
만약 프로그램별로 다른 단축키를 쓰고 싶다면 사용자 지정 키 설정 아래에 있는 추가 버튼을 눌러 자동 프로그램을 선택, 그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프로파일을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하면 특정 프로그램이 실행될 때마다 알아서 매크로 키에 지정된 내용이 바뀐다.
두 번째는 스토리지 변환 키의 오른쪽에 있는 매크로 기록 키를 이용하는 것으로 사용법은 이렇다. 매크로 기록 키를 한 번 누르면 키의 오른쪽에 있는 LED에 불이 들어온다. 다음으로 단축키 지정을 원하는 매크로 키를 누른다. 그러면 LED가 점멸하는데 이때 단축키로 지정하고 싶은 내용을 입력하고 매크로 기록 키를 누르면 원하는 대로 매크로가 설정된다. 설정했던 매크로는 번호가 붙어 저장되니 나중에 다시 불러와서 쓸 수 있다. 이렇게 단축키를 설정한 다음부터는 그저 사용하고 싶을 때 매크로 키를 눌러 사용하면 된다.
사이드와인더의 또 다른 기능, 안티 고스팅은 여러 개의 키를 눌러도 동시입력이 되게 하는 것이다. 제품 소개를 따르면 26개까지 동시 입력이 가능하다고 한다. 사실 어떤 장르의 게임을 하건 간에 26개나 되는 키가 동시에 입력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는 잘 모르겠지만(사람 손가락 개수부터 생각해보자), 아무튼 동시 입력이 된다고 하니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서 그 유용성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게임에서의 쓰임새는?
게이밍 키보드라는 이름으로 나온 만큼 게임 몇 가지를 통해 성능을 테스트해보았다. 먼저 게임을 플레이할 때 동시입력 기능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아보기 위해 디제이맥스 트릴로지를 플레이해보았다. 물론 건반 리듬액션 게임이라고 해서 항상 여러 개의 키를 동시에 누르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여러 개의 키를 동시에 눌러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본인이 사용하던 키보드는 이런 경우 백이면 백 절대 입력이 불가능해서 이런 노트가 나오면 포기하고 입력 가능한 만큼만 치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다 치고 말리라 하는 마음으로 원하는 곡을 선택하고 플레이했다. 플레이하는 동안 여러 개의 키를 동시에 눌러야 하는 노트가 몇 번인가 떨어졌는데 누르면 누르는 대로 입력의 지연이나 오류 없이 잘 입력되었다.
다음으로 스트리트파이터4를 해보았다. 스트리트파이터4를 하다 보면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여러 키를 동시에 눌러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역시 키보드에 따라서 인식이 되지 않는 것이 있어 간혹 애를 먹곤 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별다른 설정은 바꾸지 않고 키보드 설정만 편한 키 설정으로 바꾸고 게임을 시작했다. 캐릭터를 고르고 기술들을 모두 돌아가며 써보았는데 본 리뷰어의 게임 조작이 미숙해서 실수로 잘못 입력한 것이 아니면 아주 성실하게 기술이 사용되었다. 그 외에도 게임을 즐기는 동안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다.
다음으로 오퍼레이션 플래시 포인트 2 : 라이징 드래곤(이하 오플포2)을 플레이해보았다. 오플포2는 현실성에 무게를 두고 만든 현대전 FPS다. 플레이어는 군인이 되어 실제로 자신의 분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려가며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한 번 명령을 내릴 때마다 이런저런 키를 많이 눌러야 해서 상당히 귀찮다. 그래서 자주 쓰는 것들(이동, 교전, 사격 등)을 매크로 키로 지정했다. 게임을 시작하고 명령들을 매크로 사용해 내려보았다. 확실히 이전보다 빠르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고 진행도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그런데 이 게임 정말 어렵다). 매크로 키의 유용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도 플레이해보았다. LOL은 예전 워크래프트 3의 사용자 지정 맵으로 나와 유저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도타(DOTA)의 형식을 따와 만든 PvP(Player versus Player) 게임이다. 아무래도 유저의 컨트롤, 그중에서도 스킬 사용이 주가 되는 게임인지라 스킬을 제때 맞추어 쓰느냐 쓰지 못하느냐에 따라 승리가 판가름나는 경우가 많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연속해서 쓰는 스킬 들의 조합을 매크로 키에 지정해놓고 플레이했는데 게임을 하는 동안 치명적인 공격을 위해 여러 스킬을 연달아 쓸 때나 스킬을 조합해서 도망쳐야 할 경우에 굉장히 유용했다.
게임을 하며 테스트하는 동안 동시입력 기능에 대해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키보드의 동시입력 오류 때문에 상대에게 패하거나 판정에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리듬액션 게임을 좋아하는 본인으로서는 굉장히 유용한 기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반면 매크로 기능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인 느낌이었다. 키보드를 사용하는 동안 매크로 키를 쓰는 데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매크로 키를 써야 할 타이밍을 거의 잡지 못했고, 대부분의 경우 매크로가 없어도 게임 플레이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게임들과 달리 오플포2 같이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하는 명령을 자주 내려야 하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래도 즐기는 게임이나 사람에 따라 필요도가 다른 듯하다.
게임 외 작업에서의 쓰임새는?
게이밍 키보드이니 당연히 게임을 할 때에는 그 기능들이 유용한 것이 정상일 터. 그렇다면 게임을 하는 데 사용하지 않으면 어떨까? 아무래도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작업은 웹 서핑이나 문서작업 정도가 보통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간단한 사진 작업도 자주 하는 작업일 수 있겠다.
우선 웹 서핑부터 해보았다. 사실 웹 서핑으로 테스트를 한다고 해봐야 온라인 쇼핑몰이나 포털 사이트 등을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막상 웹 서핑을 하다 보니 키보드를 쓸 일이 없다. 기껏해야 검색어를 써넣는 정도? 이래서야 부가기능들이 소용이 없다.
다음으로 문서작업을 해보았다. 개인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워드 2007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런저런 문서작업을 하노라면 단축키가 필요한 순간들이 예상 외로 많이 있다. 글자 크기를 조절해야 한다든가 텍스트를 가운데에 맞추어야 한다든가 할 때가 바로 그때인데 자주 쓰는 단축키야 몇 개 외운다 치지만, 사용하기는 하는데 사용 빈도가 높지 않아 잘 외워지지는 않는 그런 단축키들은 일일이 마우스로 그 기능을 찾아서 사용하게 하는데 이거 생각보다 불편하다.
그래서 문서작업을 하는 동안 그런 단축키들을 몇 개 지정해 놓고 문서작업을 해보았다. 매크로 키에 단축키를 지정해서 사용해 보니 어느 키에 어떤 기능의 단축키를 지정되어 있는지만 기억해두면 나중에 쓸 때 좀 더 빠르게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진 편집을 해보았다. 어도비 포토샵 CS3를 사용하여 사진 작업을 하면서는 자주 쓰는 기능과 여러 개의 키를 조합해서 쓰는 단축키을 매크로로 지정해놓고 사용해보았다. 본 리뷰어는 포토샵을 사용할 때 한가지 툴을 오래도록 사용하는 습관이 있어서 단축키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마우스로 툴을 골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매크로 키를 지정하고 사용하니 아주 큰 차이는 없었지만 확실히 마우스로 툴을 하나하나 골라 사용할 때보다 작업속도가 빨라지기는 했다.
그런데 기능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키보드 자체만을 봤을 때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다른 기능을 가진 키들을 집어넣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능 키(F1~F12)들과 Esc 키의 크기가 매우 작다. 그 때문에 기능 키를 누를 일이 있을 때마다 좀 어색했다. 그리고 키의 배치도(레이아웃)가 보통의 키보드와 묘하게 달라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게임이 아닌 작업에 사이드와인더를 써보니 동시입력 기능은 거의 쓸모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매크로 기능은 활용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 활용도가 꽤 넓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하자면 쓰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매크로 키에 매력을 느낀다면…
2010년 10월, 사이드와인더의 인터넷 최저가는 약 6만 5천원가량. 가격을 보니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정도 가격이면 게이밍 키보드 중에도 조금 비싼 편이다(물론 30만 원에 육박하는 제품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사이드와인더만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나 디자인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았을 때 조금 비싸긴 하지만 터무니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리해보자. 게이밍 키보드로 나온 만큼 게임을 즐기는데 있어 그 부가기능은 빛을 발한다. 활용만 잘 한다면 게임을 할 때뿐만 아니라 게임 외의 작업을 하는데도 유용한 부가기능들이다. 2~3개 이상의 키를 조합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기능들을 하나의 키만 눌러 사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활용도가 높다 해도 키보드를 쓸 곳이라고는 타이핑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권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이드와인더의 부가기능은 있으나마나 한 것인데다 레이아웃이 보통 키보드와 다른 탓에 키보드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이드와인더는 게임을 조금이나마 즐기거나, 복잡한 단축키를 외워서 사용해야 하는 프로그램을 주로 쓰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할 것 같다. 혹 키보드를 새로 장만해야 하는데 고민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과연 얼마나 효용이 있는지 잘 따져보고 고르도록 하자.
글 / IT동아 구지원(endimia@itdonga.com)
※ 포털 내 배포되는 기사는 사진과 기사 내용이 맞지 않을 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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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묻지 마 키보드’를 써온 지 어언 10년(물론 중간에 키보드를 몇 번인가 다른 ‘묻지 마 키보드’로 바꿨었다). 그동안 잘 버텨오던 키보드의 키들이 하나둘씩 작동하지 않기 시작하며 곧 운명하실 조짐이 보였다. 그래서 슬슬 새 키보드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때마침 키보드 리뷰를 하게 되었다.
키보드를 받아보니 여태껏 봐왔던 키보드 케이스 중에 가장 화려하고 묵직하다. 케이스를 살펴보니 ‘마이크로소프트 사이드와인더 X4(이하 사이드와인더)’라는 제품명과 함께 ‘정확한 게이밍 컨트롤’이라는 말이 쓰여있다. 그 문구를 보고 나서야 게이밍 키보드라는 것을 알았다. 어쩐지 케이스부터 화려하더라. 머리털 나고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게이밍 키보드.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설치 및 외형 살펴보기
케이스를 열어보니 상자가 하나 더 있고 그 안에는 키보드와 설치 디스크, 설명서가 들어 있다. 키보드를 포장에서 꺼내보니 이거 생각보다 묵직하다. 전체적인 디자인도 꽤 멋지다. 전체가 검은색에 키와 키 사이에 하이그로시 처리가 되어 있어 번쩍번쩍하다. 본격적으로 게임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역시 게이밍 키보드여서 그런 것인지, 내가 알고 있는 키들 말고 다른 키들이 보였다. 다른 부분은 보통의 키보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Esc 키가 있어야 할 자리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키가 있다. 키보드의 왼쪽 끝에는 세로로 S1부터 S6까지 6개의 키가 있다. 기능키(F1~F12) 위에는 멀티미디어 키들(재생, 이전 트랙, 다음 트랙, 음 소거, 볼륨 업, 다운 키)이 있다. 그리고 오른쪽의 키패드 위에는 계산기 키가 있다. 솔직히 멀티미디어 키와 계산기 키를 빼고는 도대체 무슨 기능을 가진 키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나머지 키들은 대체 무슨 기능을 가진 것인가?’하고 고민을 해보았지만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제품 설명서를 찾아보니 각 키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다. Esc 키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던 키는 스토리지 전환 키라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있는 S1부터 S6까지의 키는 매크로 키였다. 스토리지 전환 키 옆에 있는 키는 매크로 기록 키고 볼륨 조절 키의 오른쪽에 있는 키는 백라이트 키였다. 하지만 제품 설명서에는 제품을 다루는데 주의해야 할 점이나 각 키에 대한 소개는 나와 있었지만 실제로 각 키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의 사용법은 나와 있지 않아 일단 패스하고 다른 부분들을 살펴보았다(나중에 보니, 각 키에 대한 설명은 설치 CD에 들어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키보드’라는 프로그램의 도움말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키보드의 아래쪽을 보니 팜레스트가 있다. 하이그로시 처리가 되어 있는 키 주변 부분과 다른 재질로 되어 있어 탈부착이 가능할 줄 알고 살펴보니 키보드와 한몸이다. 평소에 팜레스트를 빼고 쓰던 버릇이 있어 개인적으로 키보드 자체에 달린 팜레스트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비단 본 리뷰어만 이렇게 사용하는 것은 아닐 터. 사용자가 자기 취향에 맞춰 사용할 수 있도록 탈부착이 가능하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일단 키보드를 연결하려고 보니 USB 단자에 뭔가 이상한 것이 붙어 있다. 뭔가 해서 읽어보니 PC에 키보드를 연결하기 전에 함께 동봉되어 있는 설치 CD에 들어 있는 소프트웨어를 먼저 깔고 연결하라고 쓰여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면서 플러그 앤 플레이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제조사에서 권장하는 대로 하는 것이 제품을 사용하는 데 있어 더 좋을 것 같아 시키는 대로 함께 들어 있던 CD를 넣고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PC에 키보드를 연결하니 별문제 없이 인식되었고 키보드에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백라이트 기능이다. 이런 것이 있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이거 생각보다 멋지다. 백라이트 기능은 그 밝기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데 어두운 곳에서 작업을 해야 하거나 어두운 곳에서 PC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축복과도 같은 기능이다. 그런데 밝은 곳에서 백라이트를 켜놓으려고 하니 멋지기보다는 되려 신경만 쓰여 밝은 곳에서 사용할 때에는 그냥 꺼두었다.
기능 확인 및 설정하기
사이드와인더에는 ‘묻지 마 키보드’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2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매크로와 안티 고스팅 기능이었다. 먼저 매크로 기능은 매크로 키 6개(S1~S6)에 각각 다른 단축키를 저장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저장 가능한 스토리지가 총 3개라서 실질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단축키는 최대 18개다. 스토리지를 바꾸고 싶을 때에는 스토리지 변환 키를 누르면 된다.
사이드와인더에서 단축키를 설정해보자
단축키는 어떻게 지정할까? 단축키를 설정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연결 전에 설치했던 마이크로소프트 키보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마이크로소프트 키보드를 실행하면 키 설정 탭에 매크로 지정/관리가 있다. 매크로로 지정하고자 하는 키를 선택하고 매크로 지정/관리로 들어가면 매크로 편집기가 뜨는데, 왼쪽 아래의 새로 만들기를 누르고 오른쪽의 편집기를 클릭한 뒤 단축키로 지정하고 싶은 내용을 입력하고 저장하면 매크로가 지정된다.
만약 프로그램별로 다른 단축키를 쓰고 싶다면 사용자 지정 키 설정 아래에 있는 추가 버튼을 눌러 자동 프로그램을 선택, 그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프로파일을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하면 특정 프로그램이 실행될 때마다 알아서 매크로 키에 지정된 내용이 바뀐다.
두 번째는 스토리지 변환 키의 오른쪽에 있는 매크로 기록 키를 이용하는 것으로 사용법은 이렇다. 매크로 기록 키를 한 번 누르면 키의 오른쪽에 있는 LED에 불이 들어온다. 다음으로 단축키 지정을 원하는 매크로 키를 누른다. 그러면 LED가 점멸하는데 이때 단축키로 지정하고 싶은 내용을 입력하고 매크로 기록 키를 누르면 원하는 대로 매크로가 설정된다. 설정했던 매크로는 번호가 붙어 저장되니 나중에 다시 불러와서 쓸 수 있다. 이렇게 단축키를 설정한 다음부터는 그저 사용하고 싶을 때 매크로 키를 눌러 사용하면 된다.
사이드와인더의 또 다른 기능, 안티 고스팅은 여러 개의 키를 눌러도 동시입력이 되게 하는 것이다. 제품 소개를 따르면 26개까지 동시 입력이 가능하다고 한다. 사실 어떤 장르의 게임을 하건 간에 26개나 되는 키가 동시에 입력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는 잘 모르겠지만(사람 손가락 개수부터 생각해보자), 아무튼 동시 입력이 된다고 하니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서 그 유용성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게임에서의 쓰임새는?
게이밍 키보드라는 이름으로 나온 만큼 게임 몇 가지를 통해 성능을 테스트해보았다. 먼저 게임을 플레이할 때 동시입력 기능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아보기 위해 디제이맥스 트릴로지를 플레이해보았다. 물론 건반 리듬액션 게임이라고 해서 항상 여러 개의 키를 동시에 누르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여러 개의 키를 동시에 눌러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본인이 사용하던 키보드는 이런 경우 백이면 백 절대 입력이 불가능해서 이런 노트가 나오면 포기하고 입력 가능한 만큼만 치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다 치고 말리라 하는 마음으로 원하는 곡을 선택하고 플레이했다. 플레이하는 동안 여러 개의 키를 동시에 눌러야 하는 노트가 몇 번인가 떨어졌는데 누르면 누르는 대로 입력의 지연이나 오류 없이 잘 입력되었다.
다음으로 스트리트파이터4를 해보았다. 스트리트파이터4를 하다 보면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여러 키를 동시에 눌러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역시 키보드에 따라서 인식이 되지 않는 것이 있어 간혹 애를 먹곤 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별다른 설정은 바꾸지 않고 키보드 설정만 편한 키 설정으로 바꾸고 게임을 시작했다. 캐릭터를 고르고 기술들을 모두 돌아가며 써보았는데 본 리뷰어의 게임 조작이 미숙해서 실수로 잘못 입력한 것이 아니면 아주 성실하게 기술이 사용되었다. 그 외에도 게임을 즐기는 동안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다.
다음으로 오퍼레이션 플래시 포인트 2 : 라이징 드래곤(이하 오플포2)을 플레이해보았다. 오플포2는 현실성에 무게를 두고 만든 현대전 FPS다. 플레이어는 군인이 되어 실제로 자신의 분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려가며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한 번 명령을 내릴 때마다 이런저런 키를 많이 눌러야 해서 상당히 귀찮다. 그래서 자주 쓰는 것들(이동, 교전, 사격 등)을 매크로 키로 지정했다. 게임을 시작하고 명령들을 매크로 사용해 내려보았다. 확실히 이전보다 빠르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고 진행도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그런데 이 게임 정말 어렵다). 매크로 키의 유용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도 플레이해보았다. LOL은 예전 워크래프트 3의 사용자 지정 맵으로 나와 유저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도타(DOTA)의 형식을 따와 만든 PvP(Player versus Player) 게임이다. 아무래도 유저의 컨트롤, 그중에서도 스킬 사용이 주가 되는 게임인지라 스킬을 제때 맞추어 쓰느냐 쓰지 못하느냐에 따라 승리가 판가름나는 경우가 많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연속해서 쓰는 스킬 들의 조합을 매크로 키에 지정해놓고 플레이했는데 게임을 하는 동안 치명적인 공격을 위해 여러 스킬을 연달아 쓸 때나 스킬을 조합해서 도망쳐야 할 경우에 굉장히 유용했다.
게임을 하며 테스트하는 동안 동시입력 기능에 대해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키보드의 동시입력 오류 때문에 상대에게 패하거나 판정에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리듬액션 게임을 좋아하는 본인으로서는 굉장히 유용한 기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반면 매크로 기능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인 느낌이었다. 키보드를 사용하는 동안 매크로 키를 쓰는 데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매크로 키를 써야 할 타이밍을 거의 잡지 못했고, 대부분의 경우 매크로가 없어도 게임 플레이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게임들과 달리 오플포2 같이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하는 명령을 자주 내려야 하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래도 즐기는 게임이나 사람에 따라 필요도가 다른 듯하다.
게임 외 작업에서의 쓰임새는?
게이밍 키보드이니 당연히 게임을 할 때에는 그 기능들이 유용한 것이 정상일 터. 그렇다면 게임을 하는 데 사용하지 않으면 어떨까? 아무래도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작업은 웹 서핑이나 문서작업 정도가 보통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간단한 사진 작업도 자주 하는 작업일 수 있겠다.
우선 웹 서핑부터 해보았다. 사실 웹 서핑으로 테스트를 한다고 해봐야 온라인 쇼핑몰이나 포털 사이트 등을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막상 웹 서핑을 하다 보니 키보드를 쓸 일이 없다. 기껏해야 검색어를 써넣는 정도? 이래서야 부가기능들이 소용이 없다.
다음으로 문서작업을 해보았다. 개인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워드 2007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런저런 문서작업을 하노라면 단축키가 필요한 순간들이 예상 외로 많이 있다. 글자 크기를 조절해야 한다든가 텍스트를 가운데에 맞추어야 한다든가 할 때가 바로 그때인데 자주 쓰는 단축키야 몇 개 외운다 치지만, 사용하기는 하는데 사용 빈도가 높지 않아 잘 외워지지는 않는 그런 단축키들은 일일이 마우스로 그 기능을 찾아서 사용하게 하는데 이거 생각보다 불편하다.
그래서 문서작업을 하는 동안 그런 단축키들을 몇 개 지정해 놓고 문서작업을 해보았다. 매크로 키에 단축키를 지정해서 사용해 보니 어느 키에 어떤 기능의 단축키를 지정되어 있는지만 기억해두면 나중에 쓸 때 좀 더 빠르게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진 편집을 해보았다. 어도비 포토샵 CS3를 사용하여 사진 작업을 하면서는 자주 쓰는 기능과 여러 개의 키를 조합해서 쓰는 단축키을 매크로로 지정해놓고 사용해보았다. 본 리뷰어는 포토샵을 사용할 때 한가지 툴을 오래도록 사용하는 습관이 있어서 단축키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마우스로 툴을 골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매크로 키를 지정하고 사용하니 아주 큰 차이는 없었지만 확실히 마우스로 툴을 하나하나 골라 사용할 때보다 작업속도가 빨라지기는 했다.
그런데 기능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키보드 자체만을 봤을 때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다른 기능을 가진 키들을 집어넣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능 키(F1~F12)들과 Esc 키의 크기가 매우 작다. 그 때문에 기능 키를 누를 일이 있을 때마다 좀 어색했다. 그리고 키의 배치도(레이아웃)가 보통의 키보드와 묘하게 달라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게임이 아닌 작업에 사이드와인더를 써보니 동시입력 기능은 거의 쓸모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매크로 기능은 활용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 활용도가 꽤 넓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하자면 쓰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매크로 키에 매력을 느낀다면…
2010년 10월, 사이드와인더의 인터넷 최저가는 약 6만 5천원가량. 가격을 보니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정도 가격이면 게이밍 키보드 중에도 조금 비싼 편이다(물론 30만 원에 육박하는 제품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사이드와인더만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나 디자인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았을 때 조금 비싸긴 하지만 터무니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리해보자. 게이밍 키보드로 나온 만큼 게임을 즐기는데 있어 그 부가기능은 빛을 발한다. 활용만 잘 한다면 게임을 할 때뿐만 아니라 게임 외의 작업을 하는데도 유용한 부가기능들이다. 2~3개 이상의 키를 조합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기능들을 하나의 키만 눌러 사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활용도가 높다 해도 키보드를 쓸 곳이라고는 타이핑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권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이드와인더의 부가기능은 있으나마나 한 것인데다 레이아웃이 보통 키보드와 다른 탓에 키보드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이드와인더는 게임을 조금이나마 즐기거나, 복잡한 단축키를 외워서 사용해야 하는 프로그램을 주로 쓰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할 것 같다. 혹 키보드를 새로 장만해야 하는데 고민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과연 얼마나 효용이 있는지 잘 따져보고 고르도록 하자.
글 / IT동아 구지원(endimia@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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