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만난 사람|KBO 심판위원회 나광남 팀장] “가을잔치 재밌죠? 저는 살 떨립니다!”

입력 2010-10-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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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선수 출신, 그리고 심판 경력 19년의 베테랑. 그러나 나광남 팀장은 포스트시즌을 “살이 떨리는 무대”라고 표현했다. 13일 플레이오프 5차전을 앞두고 대구에서 심판들은 또 한번 집중, 또 집중을 외쳤다.

프로야구선수 출신, 그리고 심판 경력 19년의 베테랑. 그러나 나광남 팀장은 포스트시즌을 “살이 떨리는 무대”라고 표현했다. 13일 플레이오프 5차전을 앞두고 대구에서 심판들은 또 한번 집중, 또 집중을 외쳤다.

“심판은 손짓 하나 잘못하면 남의 1년 농사 망칠수 있는 직업”
피말리는 PS 19년차 베테랑도 부담
공정한 판정 위해 시력보호제는 필수
하체단련은 물론 안면마사지도 받아

선수든 심판이든 힘 빼야 실수 없죠

“한마디로요? 포청천이죠. 선수들과 신뢰도 깊고요….”

인터뷰 중간 심판실의 창문을 연 양준혁(41·삼성)은 그를 이렇게 평했다. 프로야구 심판 19년차. 베테랑이지만, 가을잔치만은 그에게도 “살이 떨리는” 무대다. 그의 몸짓 하나에 수 십 명의 선수, 아니 수백만 시청자가 울고 또 웃기 때문이다. 웃는 자는 그것으로 끝이지만, 우는 자는 때로 그들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특히,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포스트시즌이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모든 비난을 들으면서도 또, 말을 아껴야 하는 그들. 그래서 심판은 ‘비애의 직업’이다. PO 최종전을 앞둔 대구구장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회 나광남(43) 팀장을 만났다.


○실책 하나에 남의 농사를 망칠 수 있으니….

나 팀장은 플레이오프(PO) 4차전 주심이었다. 삼성타자들은 홈플레이트에 바싹 붙었다. 벼랑끝에 몰렸기에 몸에 맞고서라도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런 경우, 주심은 몸쪽 공 판정을 위한 시야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평소에 좀 떨어져서 치는 박석민까지도 다 (홈 플레이트에) 붙더라고요. 저도 더 집중력이 커졌지요.”

4시간 28분의 대혈투가 끝나는 순간. 극도의 긴장감이 한 순간에 풀리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술 한 잔이 하고 싶더라고요. 집에 가서 와이프랑 딱 맥주 3잔을 마셨는데 확 올라오데요.” 그럼에도 그는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TV로 녹화중계를 보며 4시간 28분 동안 복기를 했다. ‘아, 저건 보크였는데….’ ‘김동주(두산)는 홈플레이트에 닿지 않았네.’ 실수도 있었고 ‘나이스 플레이’도 있었다. 또 한 번 야구 생각을 하다가 눈을 감았다.

나 팀장은 5차전에서는 대기심이다. “5차전 주심은 이미 최수원 심판으로 배정돼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더라고요. ‘5차전까지 안 갔으면 좋겠다’고…. 어제 저녁부터 몸조리 하던데요.” 옆에 있던 양준혁도 “아우 떨리시겠다”며 어깨를 부르르. 최고의 선수들이 뛰는 가을잔치인 만큼 심판 역시 ‘최고’만 배정된다. 하지만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한 번의 실책으로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있다. “내 실수 한 번으로 남의 농사까지 망칠 수도 있으니까 더 부담이 되죠.”



판정에 제일 중요한 감각은 역시 시력. 양쪽 시력이 1.0정도지만, 시력보호제와 눈에 좋다는 블루베리까지 챙겨 먹는다. “1루심은 접전상황에서 눈으로 타자주자가 1루를 밟는 것을 보고, 귀로는 송구가 미트에 들어오는 소리를 들어요.” 시각 뿐 아니라 항상 오감의 컨디션을 최고로 끌어올려야 한다. 공수교대 때마다 안면마사지로 긴장을 푸는 것도 이 때문이다. PO를 앞두고는 산행으로 하체단련에도 더 신경을 썼다.


○포청천이 되려면? 몸과 마음의 힘을 빼야

프로야구 선수출신인 나 팀장은 홈스틸 도중 어깨를 다쳐 일찍 그라운드를 떠났다. 지금도 격렬하게 제스처를 취하면 어깨가 욱신거린다. 그래서인지 삼진콜을 할 때도 어깨에 충격이 덜 가도록, 팔을 옆으로 휘젓는다. “선수나 심판이나 몸에 힘을 빼야 해요. 크로스 상황에서 힘이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미리 예측한대로 판정이 나오거든요. 타이밍상 아웃이지만 세이프이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잡아내야 하니까요.”

심판은 몸 뿐 아니라 마음에도 힘을 빼야 한다. 모 감독은 “항의를 하러 나갔을 때 심판이 솔직히 실수를 인정하면 나로서도 할 말이 없어 그냥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나 팀장의 생각도 같다. “권위요? 그런 게 어디 미리 선언한다고 나오나요. 실수는 깨끗하게 인정하고, 정확한 판정을 많이 하다보면 저를 믿어주는 것이죠. 다 야구인이니까요.”

선수나 심판이나 실책을 마음에 담아두면 더 큰 실수가 나오는 법. 큰 경기일수록 더 그렇다. 냉정, 평정심. 그것만을 되뇔 뿐이다. PO 1∼4차전은 모두 1점차 승부였다. 나 팀장은 “땅볼 하나도 홈런 판정 대하듯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팬들에게 재밌는 경기일수록 이들은 백척간두 위에 있다. 나 팀장이 주심이던 현대와 삼성의 2004한국시리즈 9차전. 정규시즌이라면 도저히 진행할 수 없을 정도의 폭우였음에도 끊을 수 없었던 주심의 심정이 딱 그랬다.

“준PO에서 애드벌룬에 타구가 맞을 때처럼, 오늘 경기에서도 희한한 상황이 나오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타구가 날아가는 새에 맞는 정도는 다 규칙에 나와 있어요. 새와 지면이 같다고 보는 거예요. 야수가 잡았어도 일단 인플레이지요. 단, 완벽한 홈런타구였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홈런 선언을 할 수 있고요.” 웃음부터 나오는 상황이지만,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가을잔치의 판관들은 냉정한 시선으로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대구|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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