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찌푸린 삼성 선동열 감독(왼쪽), 각을 세운 SK 김성근 감독. 14일 인천 문학월드컵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두 사령탑은 양준혁의 덕아웃 출입문제로 정면충돌했다.
선동열-김성근 날선 전초전
야박하게 그러기냐? vs 야박해도 할 수 없다.미디어데이는 복싱으로 치면 눈싸움 같다. 서로 눈길을 피하고 끝낼 수 있지만 눈끼리 불꽃이 튀면 싸우기도 전부터 적의가 생길 수 있다. 14일 SK-삼성의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는 양쪽 다 눈을 내리 깔지 않는 쪽을 택했다.
불씨는 뜻밖에도 은퇴한 양준혁이었다. 요체는 엔트리 바깥 선수인 양준혁이 덕아웃에 앉아있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었다. 특히 SK 김성근 감독과 양준혁의 사제 인연이 얽혀 있기에 사안은 더 복잡미묘했다.
이 갈림길에서 김 감독은 인간적 의리보다 원리원칙을 택했다.
김 감독은 “우리가 항의하기에 앞서 KBO 차원에서 처리할 일”이라고 밝혔다. “양준혁은 은퇴한 선수 아니냐?”라고도 했다. 완곡화법을 구사했지만 양준혁이 삼성 덕아웃에 앉는 것은 엄연한 규정위반이고, 거기서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도 있으니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공교롭게도 김 감독에 바로 앞서 삼성 선동열 감독은 “양준혁이 맏형으로서 선수들에게 어드바이스를 해주고 있다. 플레이오프 때도 두산에서 이의 등 문제제기가 없었다. 한국시리즈도 덕아웃에 계속 둘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나 곧바로 김 감독이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인간적 감정은 없지만 원리원칙으로 접근해야 될 문제”라고 자른 것이다. 현장 목격자들이 “선 감독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라 놀랐다”고 한 순간이었다. 실제 선 감독은 미디어데이 직후에도 “그럼 덕아웃 옆에 앉히면 되는 것 아니냐?”며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삼성 관계자는 “제발 항의해서 퇴장 당하게 해줘라. 선수들 투지 불타게”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태가 가열되자 KBO는 조종규 심판위원장을 통해 “덕아웃 옆의 공간(소위 B덕아웃)도 덕아웃으로 봐야 된다. 그동안 관례적으로 항의가 있을 때만 조치를 취했는데 이제부터 심판진이 즉각 퇴장을 지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 더, ‘양준혁’에 가렸지만 또 하나의 숨겨진 포인트는 김 감독의 플레이오프 발언이었다. “한국시리즈도 플레이오프처럼 (끝까지) 1점차 승부면 난 죽어버린다. 감독이 아니라 시청자 입장이라면 ‘야구 이렇게 하느냐’고 할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단 (SK는) 한국시리즈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뒤집자면 김 감독이 ‘팬으로서는 만점, 감독으로서는 낙제점을 줬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문학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