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에이스였던 이승호가 우승의 주역이 됐다. 팬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그 세월…. 하지만 그의 오기만큼은 더욱 선명해졌던 덕분이다. 이제 그는 1군의 붙박이 투수라는 또 다른 목표를 가슴 속에 새긴다.스포츠동아DB
구속도 뚝!…올시즌 2군서 와신상담
8년만에 KS…3차전 MVP 등 부활투
“고마운 아내…내년 풀타임 약속할게”#SK 큰 이승호(34)의 외동딸 채현(6)은 요즘 신이 났다. 야구가 없는 월요일이면 아빠가 유치원에 데려다주는데 선생님부터 아빠를 알아주는 것 같아서다. 그 전에는 아빠를 ‘백수’처럼 봤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국시리즈(KS)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19일 SK가 4연승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은 그날 밤, 호텔로 돌아온 이승호는 난생 처음 휴대폰 문자라는 것을 보냈다. 딱 세 글자, “고마워.” 수신자는 한 살 연상의 부인 김지은 씨였다.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2008년 겨울 LG의 마무리 훈련지인 경남 진주에서 SK행을 통보받았던 때가 떠올랐다. FA 이진영(LG)의 보상선수로 낙점돼 1999년부터 10년을 뛴 LG에 이별당하는 순간이었다. 집에 전화를 걸어 알리자 부인은 흐느꼈다. 그때 맺혔던 한(恨)이, 마음의 빚이 이제야 씻기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미움 받는 자보다 잊혀지는 자가 더 힘들다’고 했는데 이승호가 꼭 그랬다. 2004년 어깨수술, 시속 150km의 강속구가 사라졌다. 130km까지 떨어졌다. 어느 순간에 LG 에이스이자 국가대표에서 그저 그런 보상선수로 전락해 있었다. 설상가상, SK로 와서 2009년 팔꿈치수술을 받았다. 너무 아팠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야구밖에 없었다. 안될 줄 알았지만 포기는 안했다.
이 악물고 해봤는데 2010년에도 2군에서 출발했다. 자포자기의 마음도 생겼다. 그러나 계형철 2군 감독이 잡아줬다.
8월의 어느 날, 기적이 시작됐다. 김성근 감독이 2군 연습장을 찾아와 한번 던져보라고 했다. 150구를 던졌다. 다음날 김 감독은 또 왔다. 또 150구를 던졌다. 그렇게 15일 중 10일을 던졌다.
9월 16일 잠실 LG전에 선발등판, 5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자신감이 생겼다. 그 다음에는 9월 22일 잠실 두산전에 구원 등판, 2.2이닝 무실점으로 구원승을 챙겼다. SK가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승리였다.
그 후 김 감독은 흘리듯 “KS는 큰 이승호가 키”라고 했다. 귀담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사자조차도 엔트리 발표 때까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정말 됐다. 2002년 KS 이후 8년만이었다. 15일 1차전 직전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 1차전에 불펜 투입되지 않으면 16일 2차전에 나간다는 얘기였다. 등판이 무서웠던 2002년 KS와 달리 마음이 편했다. 3이닝만 막자고 했다. 결국 2회에 강판됐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18일 3차전에 구원등판해 KS 승리투수이자 데일리 MVP가 됐다. 놀랍게도 144km가 찍혔다. 이어 다음날, 생애 첫 KS 우승까지.
우승 순간 멍했다. 김재현의 눈물을 보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제 여한도, 욕심도 없다. 단 하나, 선발이든 불펜이든 풀 시즌을 던져보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