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용인 흥국생명연수원 체육관에서 만난 여자배구 흥국생명 반다이라(왼쪽) 감독과 일본 여자배구 JT마블러스 이시하라 감독이 악수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전날 먹은 술 때문에 얼굴이 정상이 아니라며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했다. 누구와 함께 마셨냐고 묻자 “미스터 황(현대건설 황현주 감독)”이라고 했다. “맥주랑 소주를 섞어 새벽 3시까지 마셨다”며 세 개 손가락을 펼쳐 보인 이들은 다름 아닌 흥국생명 여자배구단 반다이라 마모루(41) 감독대행과 한국에서 전지훈련 중인 일본여자프로팀 JT마블러스 아키히사 이시하라(44) 감독.
반다이라 감독은 91년 다이에 코치를 시작으로 히사미츠 제약(00∼05), 일본대표팀 코치(05∼08) 등을 지냈고, 이시하라 감독은 페루청소년대표팀을 이끌었다. JT마블러스가 입국하기 하루 전인 21일 용인 흥국생명연수원 체육관에서 만난 두 명의 일본인 사령탑들은 자국 무대에서 오랜 시간 코치로 활동하며 잘 알고 있는 사이였고, 여러 모로 닮은꼴이었다.
공교롭게도 둘은 흥국생명을 거쳐 JT마블러스로 임대된 김연경이라는 공통 분모로 묶여 있다. 이시하라 감독이 “김연경을 통해 한국 배구를 보고 있다. 오래 전부터 한국을 자주 오가며 유심히 살폈는데 13년 전부터 급격히 발전해왔다. 완벽한 신체 밸런스, 공수 모두 완벽한 실력을 보이는 김연경은 한국 배구의 성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입을 열자, 반다이라 감독도 “김연경은 ‘한국 배구를 보는 창’이다. 김연경은 양국 선수들이 삼을만한 최상의 롤 모델”이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흥국생명 입장에서 마냥 좋을 수는 없을 터. 김연경이 빠지자 흥국생명은 최고에서 한 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그래도 반다이라 감독은 긍정을 먼저 봤다.
“김연경이 빠져 어려웠던 건 맞다. 그러나 우리가 수정할 부분, 반성할 점들을 체크할 수 있었던 기회도 됐다. 배구는 단체 종목이지만 개인 능력에서도 승부가 갈린다. 팀 전체를 내다봤을 때, ‘제2의 김연경’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당연히 한국 배구에 대한 인상도 좋았다.
이들은 대표급 레벨에서 볼 때 양 국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고 했다. 한국이 상승하면 일본은 하향곡선을 그리며 반비례 그래프를 보였지만 그 속에서 부지런히 서로의 발전을 꾀했다는 것. 둘은 “한국과 일본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작은 체격을 스피드와 조직력으로 상쇄했고, 신장이 보다 커진 현재는 파워까지 키웠다”고 입을 모았다.
양 국 명문 팀을 이끄는 지휘자로서 견해와 지향점도 같았다.
반다이라 감독은 “스포츠에 승부도 중요하지만 훨씬 긴 선수 이후의 삶도 고려해야 한다. 선수로서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선수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이시하라 감독 역시 “배구 밖에 모르는 선수는 결코 필요 없다. 인간으로서 풍요로운 삶은 배구 코트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용인|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