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의 광저우 에세이] 잘나가는 한국양궁, 문체부만 찬밥 대접

입력 2010-11-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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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정말 주몽의 후예라서 활을 잘 쏘는 것이냐?”는 우문을 던지면, 양궁인들은 그냥 피식 웃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스위스는요? 윌리엄 텔은 아들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두고 활을 쐈다지요.

아마 그 부감감은 올림픽 결승에서 양궁선수가 느끼는 그것보다 훨씬 컸을 거예요. 하지만 스위스가 양궁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말은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양궁 용어 중에 ‘로빈 애로우’라는 것이 있습니다. 앞서 쏜 화살을 둘로 쪼갤 정도로 정교한 활 솜씨를 일컫는 말입니다. 영화 보신 분들은 아마 다 기억을 하실 거예요.

하지만 로빈 후드의 나라 영국도 양궁 국제무대에서는 큰 성과를 낸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민족성 운운하는 것은 양궁인들에게 결례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수육성시스템과 세계표준의 양궁기술을 향한 지도자들의 열정이 빚어낸 결과니까요.

하지만 이런 한국양궁의 기운을 빼는 일이 종종 빚어집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회계감사를 하면요, 대한양궁협회(양궁협회)는 C등급을 받는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슬픈 웃음’이 나옵니다. 양궁협회가 수익사업을 안하기 때문이라네요.

문체부는 대한체육회 산하 55개 가맹단체가 재정적으로 자립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익사업을 장려합니다. 단증 발급 등 대중적인 수익구조가 없는 각 경기가맹 단체들은 누구의 호주머니에 기대야 할까요? 바로 지도자·선수들입니다.

대부분의 가맹경기단체들은 지도자 강습회를 할 때, 많게는 수 십 만원까지의 강습료를 받습니다. 대회 때마다 참가비도 내야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혹시라도 집안형편이 좋지 않은 유망주들에겐 큰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양궁은 ‘지도자 강습료, 대회 참가비’라는 단어를 알지 못합니다. 양궁협회 차원에서 과감한 투자를 하기 때문이지요. C등급을 받더라도, 할 것은 하겠답니다.

올해부터 소년체전을 5월에서 8월로 옮겼지요?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들겠다는 취지는 좋았는데요. 굳이 양궁뿐 아니라, 각 종목 지도자들은 볼멘 소리를 합니다. 5월에 소년체전을 하면 이후에는 그나마 수업을 들어가게 되지만, 여름방학에 하면 1학기 내내 수업은 뒷전일 수밖에 없답니다.

현장에서는 이미 “시스템은 바꾸지 않은 상황에서 날짜만 바꾸면 무엇 하느냐”는 비판이 터져 나온 지 오래입니다.

문체부는 2011년부터 양궁학생대회도 주말에 열라고 지시한 모양인데요. 지도자들은 “축구라면 모를까, 양궁이라는 운동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안타까워합니다.

양궁대회는 보통 남녀 예선·결선까지 총 4일간 열립니다. 거기에다 첫 날 조준훈련까지 더해지면 총 5일간 대회장에 머무는데요. 주말 이틀 간 경기를 하고, 또 2주 뒤에 이틀간 대회를 치른다는 것은 여간 곤욕이 아닙니다.

지도자들의 이중 출장부담은 그렇다고 치자고요. 선수들은 감각을 다시 조율해야 하니, 예선성적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학생선수들의 경기력에도 지장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종목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물이지요. 실사 한 번 와 본 사람이 없었다고 하네요.

이것저것 도와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사실 그런 도움 없이도 이렇게 세계정상에 우뚝 섰으니까요…. 다만 문체부가 한국양궁을 기운 빠지게 하지 않고, 발목만 잡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주몽의 후예라서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제패한 것이 아니니까요.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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