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운드 이상의 무게감을 지닌 게임의 사운드
게임을 즐길 때 가장 먼저 게이머들에게 느낌을 전해주는 요소라면 게임 그래픽을 꼽을 수 있다. 출시 이전의 게임들이 해당 게임의 정보를 공개할 때 가장 먼저 공개하는 정보가 게임의 스크린샷이라는 것만 생각하더라도, 게임 그래픽이 게임에 대한 첫 인상을 얼마나 좌우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하지만 그에 반해 게임 사운드라는 측면은 그 가치가 다소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영화를 볼 때는 사운드 환경을 고려해서 영화를 감상하는 이들도 정작 게임을 즐길 때는 게임 사운드의 가치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게임 사운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영화 감상 시 영화 사운드가 갖고 있는 비중 못지 않게 중요하다. 90년대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하프라이프 1'이 높은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동네 쌀집 아저씨와 우체부 아저씨가 갑자기 연극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하는 듯한 어설픈 사운드를 선보여 두고두고 우스갯거리가 됐던 전례는 게임의 사운드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영화의 사운드 못지 않게 게임의 사운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영화 사운드와 게임 사운드는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제작된다. 콘텐츠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는 목적은 같지만, 그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의 경우 전장의 한 가운데에 있는 듯한 상황을 구현하고 영상을 만들더라도, 영화 속의 주인공 시점인 3인칭 시점을 전제하고 영상이 제작되기 때문에 사운드 역시 청자의 입장이 아닌 화면의 상황에 맞춰서 구성된다.
이에 반해 게임의 사운드는 영화와는 조금 다른 구조를 띄고 있다.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의 시야가 게임 속 캐릭터의 시야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게이머들은 3인칭이 아닌 1인칭 입장에서 사운드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즉, 게이머는 게임의 사운드를 들으면서 게임 속의 주인공 입장에서 게임 속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이렇듯 게임의 사운드는 비중은 영화 사운드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조금 다른 면모를 띄고 있다. 그렇다면 게임의 사운드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작업 환경과 게임 장르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고, 작업을 맡은 업체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게임의 사운드를 제작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게임의 분위기와 가장 어울리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것'을 첫 번째로 꼽는다.
게임 게임의 컨셉아트, 세계관, 게임영상, 캐릭터 설정 등 게임에 관련한 정보를 통해 게임에 가장 어울리는 사운드 컨셉을 정하는 것이다. 이는 가장 단순해 보이는 작업이지만, 게임의 사운드가 '게임의 분위기를 극대화 시키는 요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작업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컨셉이 정해진 이후부터는 각 장면에 사용되는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최근 게임의 그래픽이 발전하고 사실성이 뛰어난 작품들이 제작되면서 게임에 들어가는 사운드의 품질 역시 과거에 비해 매우 발전하고 있으며, 보다 생동감 있는 음향효과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타격감이 중요한 FPS 게임의 경우, 타격감을 더욱 강조할 수 있도록 게임에 등장하는 총기의 모델이 되는 실제 총기의 사운드를 녹음하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 밖에도 중세 시대의 갑옷과 검이 충돌하는 타격감을 구현하기 위하여 골동품 상점을 다니며 실제 갑옷을 찾아내기도 하고, 스포츠 게임에서 현장감을 더하기 위해 실제 프로구단의 서포터들의 함성과 응원가를 녹음해서 게임에 구현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사운드 제작에 못지 않은 정성이 들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 비해 국내 게이머들과 개발사들이 지니고 있는 게임 사운드의 중요함에 대한 인식이 해외의 경우에 비해 부족한 현실이다.
해외의 경우는 게임의 사운드를 제작함에 있어 게임 제작비의 7%, 많게는 10% 정도를 게임 사운드 제작 비용에 투자하는 경우도 찾을 수 있지만, 국내의 경우에는 게임 사운드 제작에 이 정도의 비용을 투자하는 예를 찾기 어렵다.
자금뿐만 아니라 개발 여건 역시 아직은 부족한 편이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마무리 하는 바람에 사운드 작업의 완성도가 부족하거나, 하나의 작품을 여러 스튜디오가 담당해, 소통의 부족으로 인해 전반적인 퀄리티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는 사운드 제작자들의 이야기는 게임시장 발전을 위해서라도 흘려들어서는 안될 이야기다.
게임의 사운드는 영화의 사운드 못지 않게 해당 콘텐츠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중요한 콘텐츠이다. 국산 게임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게이머들은 물론 게임 개발사들이 게임 사운드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괜히 대한민국 게임대상의 시상 부문에 게임사운드 부문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에이지 오브 코난, 포인트 블랭크, 헤일로 시리즈, 로스트 오디세이 등의 다양한 작품의 사운드 작업을 담당한 바 있는 무사이 스튜디오의 여경천PD는 "게임을 즐길 때 사운드가 유난히 부각되는 것이 아닌, 게임 그 자체를 부각시켜 줄 수 있는 요소가 게임의 사운드이다. 이를 위해 게이머들의 귀를 피로하게 만들 수 있는 효과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라며, "게임을 즐길 때, 출력되는 사운드를 듣고 '어떤 의도로 이러한 사운드를 만들었을까?'라는 점을 파악한다면 게임을 좀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한준 게임동아 기자 (endoflife81@gamedong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