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월드컵 개최지가 발표된 3일 0시(한국시간) 스위스 취리히의 메세젠트룸. 예정된 발표가 20여 분간 지연되고 있을 때 현장에서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카타르 유치위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고, 순식간 그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바로 옆 한국 유치위는 표정이 어두웠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기자들이 2022년 월드컵 유치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2018년 개최지가 발표되기도 전이었다.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의 공식발표 이후 러시아(2018년), 카타르(2022년)는 발표장에 남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나머지 국가의 유치위 관계자들과 기자들은 믹스트 존에서 인터뷰를 했다.
믹스트 존에 가장 먼저 나타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한승주 위원장은 패배를 예상하지 못한 듯 말하는 도중 계속 입술을 떨었다.
유치위의 실질적인 수장 정몽준 FIFA 부회장도 얼굴이 상기된 채 인터뷰를 마치고 메세젠트룸을 떠났다. 한국 유치위의 분위기는 참담했다.
당초 2022년 월드컵 유치가 힘들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현지에 취재를 나온 한국 기자단은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정 FIFA 부회장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1994년부터 16년째 FIFA 부회장을 맡고 있다.
국제축구계에서 ‘닥터 정’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투표 결과를 보면 카타르와 러시아는 압도적인 표차로 대회를 유치했다. 스위스로 오기 전부터 집행위원들의 마음을 확실히 다져놓았다는 방증이다. 공교롭게도 러시아와 카타르 모두 정부와 왕실의 막강 후원을 받았다. 가스와 석유를 팔아 마련한 막대한 자본도 큰 힘이 됐다.
한 개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상대였다.
허탈함이 밀려들었다. 카타르는 1차 투표에서 1표만 더 받았으면 곧바로 당선도 가능했을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했다. 어떤 수단이 동원됐는지 모르지만 집행위원들의 표심을 확실하게 잡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과 힘의 차이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취리히(스위스) |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