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The Fan] 그깟 ‘공놀이’가 뭐기에 3대가 야구에 미쳤을까

입력 2010-12-3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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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야구선수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 마련에 관심이 많다. 야구계 변방에서 꾸준히 팬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우리 집에 놀러 오거나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다. 어떻게 환갑이 넘으신 아버지부터 네 살짜리 조카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열성 야구팬인데다 심지어 모두 같은 팀(한화)을 응원할 수 있는지 신기하단다. 글쎄, 내 입장에서는 한 가족끼리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대관절 집에서 야구 이야기를 빼면 어떤 대화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가족에게 야구란, 공기나 물처럼 항상 함께 하는 존재다. 모이면 자연스럽게 야구를 화제에 올리고,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떠나도 꼬박꼬박 국제전화로 야구 소식을 묻는다.

남동생이 훈련소에 입소했을 적에는 식구들이 매일같이 훈련병 카페에 야구 소식을 올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낸 첫 번째 편지에 “이글스 소식을 좀 더 자세히 알려주세요”라고 쓰는 바람에, 우리 모두 진심으로 화를 냈다. 도대체 그 이상 어떻게 더 자세하게 알려달라는 말인지….

물론 가족이 모두 열성팬이면 좋은 점이 아주 많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야구와 관련해 부모님으로부터 걱정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자율학습 시간에 야구장에 가거나 밤 늦게까지 야구중계를 보고 있어도 “공부는 안하고 야구나 본다”는 말씀은 단 한번도 안하셨다. 아무렴. 우리 집에서 그 누구도 야구를 일컬어 ‘야구나’라는 말로 폄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 간에 애정이 돈독해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자고로 어느 조직이든, 같이 좋아하고 함께 흉볼 대상이 있을 때 결속력이 높아지지 않던가. 우리 팀을 맹렬히 응원하고, 상대를 한마음으로 공격하며 점점 진해지는 그 동지애란! 목이 터져라 응원한 다음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할 때, 역시 우리는 하나라는 짜릿함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 역전패를 하거나 연패를 당할 때는 집안 분위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우울하다. 슬픈 일이 생기면 가족에게 털어놓고 위로를 받아야 극복할 수 있는 법인데, 온 식구가 다 같이 화나고 분할 때는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함께 씩씩거리며 분통을 터뜨리다가 술 한잔 나눌 수밖에.

어쩌면 장·단점을 따져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야구는 우리 가족에게 있어 공통의 취미,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아버지께서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쉬실 때의 일이다. 당시 아버지는 더 이상 사회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자괴감에 시달리셨는데, 그런 아버지를 치료해준 존재가 바로 야구다.

야구선수로는 정년퇴직을 해도 벌써 했을 나이에 젊은 선수 못지않게 활약하는 송진우, 구대성 선수를 보며 위안과 용기를 얻으셨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아버지는 지금 재취업에 성공해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고, 지난 가을 구대성 선수의 은퇴식 때 한걸음에 달려가 누구보다도 뜨겁게 박수를 치셨다.

가끔은 어이없는 플레이에 화를 내기도 하고, 때때로 “내가 다시 야구를 보면 사람이 아니다”라며 비장한 결심을 하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 모두 야구를 떠날 수 없는 건, 어쩌면 야구와 이글스에 아직 갚지 못한 빚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마도 그 빚은 영원히 다 갚지 못하리라.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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